베일 벗은 애플 ‘아이(AI)폰’ 전략, 기세등등…기대와 우려는

입력
2024.06.15 14:00
'WWDC'에서 ‘애플 인텔리전스’ 발표, 주목
시장 반응 긍정적 평가…시가총액도 급등
자체AI 아닌 오픈AI 제휴, 혁신 이미지 훼손
[아로마스픽(97)]6.10~14

편집자주

4차 산업 혁명 시대다.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한 초연결 지능형 사회 구현도 초읽기다. 이곳에서 공생할 인공지능(AI), 로봇(Robot), 메타버스(Metaverse), 자율주행(Auto vehicle/드론·무인차), 반도체(Semiconductor), 보안(Security) 등에 대한 주간 동향을 살펴봤다.

“출시와 동시에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다.”

자신만만했다. 이미 내로라한 글로벌 기업들이 선점한 생성형 인공지능(AI)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처지였지만 위축감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그동안 자타공인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해온 여유로도 읽혔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애플 본사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행사 ‘세계개발자대회(WWDC)’에 참석, 자체 AI 시스템인 ‘애플 인텔리전스’를 발표하면서 내비친 출사표다. 그는 이어 “우리는 수년 전부터 AI와 머신러닝을 (애플의 디지털기기에) 접목해왔으며 생성형 AI는 이를 더 새롭고 강력한 차원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생성형 AI 시장 경쟁에 후발주자로 참전한 애플의 행보가 기세등등이다. 생성형 AI 분야 초반 주도권을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을 포함한 경쟁사들에 내준 와중에도 아이폰과 아이패드, 애플워치 등 기존 모바일 기기 시장에서 확보한 영향력하에 만회가 가능할 것이란 느긋함으로 읽힌다. 애플의 AI 로드맵에 대해 일시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현지 시장 평가도 금세 긍정적인 전망과 함께 돌아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선 애플만의 독특한 신박함을 찾아보긴 어려웠단 진단도 나온다. 일각에선 그동안 애플의 트레이드마크로 각인됐던 혁신 이미지에서 이탈하며 입게 된 무형적인 가치 손실과 이미지 훼손은 감안해야 할 부분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오픈AI와 제휴, 자체 음성 AI 비서 ‘시리’ 성능 개선…애플 13일 기준, 시가총액 MS 제치고 1위

매년 이맘때 전 세계 개발자들을 초청, 개최돼온 WWDC에선 그해 연말 발표될 아이폰 신제품 운영체제(OS)와 주요 기능 등을 포함해 애플의 향후 전략이 소개된다. 올해 행사에선 자사 디지털 기기 OS에 탑재 예정이라고 밝힌 ‘애플 인텔리전스’가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갔다. 애플 인텔리전스는 텍스트 요약과 이미지 생성, 사용자 맞춤형 데이터 검색 등에 용이하다. 통화 도중 녹음을 하면 통화자 모두에게 녹음 사실이 자동으로 알려지고, 통화 이후엔 요약본까지 생성된다. 이런 AI 기능은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 기본적으로 내장형(온디바이스) 형태로 제공되거나 지정된 개인이나 기업 전용 저장장치인 ‘프라이빗 클라우드’에서 처리토록 했다.

애플은 특히 오픈AI와 제휴, 자체 음성 AI 비서 '시리'에 ‘챗GPT’(이용자 무료)를 접목한다고 밝혔다. 3년 전, 음성 비서로 선보인 시리는 10여 년 만에 생성형 AI를 탑재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애플은 “시리는 일일 요청 건수가 15억 건에 달하는 지능형 AI 비서의 원조”라며 “올해 말 오픈AI의 ‘챗GPT-4o’가 통합되고 다른 AI 기능도 추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챗GPT 최신 버전으로 출시된 ‘챗GPT-4o’는 사람처럼 음성 대화가 가능하다. ‘챗GPT-4o’를 내장한 시리는 회의록 요약과 더불어 동료와 공유나 스케줄 작성까지 가능하게 됐다. 예컨대 '엄마 비행기 도착 시간을 알려달라'고 하면 이메일 내 항공편 정보로 시간을 알려주고, 픽업 일정도 이용자 개인 일정에 포함시켜준다. 특정 자료가 이메일이나 문자, 사진첩 등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도 시리에게 물어보면 즉시 확인할 수 있다.

애플 AI 전략엔 시장도 화답했다. 13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애플 주가는 전날보다 0.55% 오른 214.24달러(29만5,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10일 'AI 전략' 발표 이후 11일부터 3일 연속 상승 마감이다. 시가총액도 3조2,850억 달러(4,526조 원)로 불어나면서 MS를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시총 1위 자리에 올랐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애플의 AI 기능이 가장 차별화한 소비자 디지털 에이전트로서 모바일 기기의 교체 주기를 단축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체 AI에 ‘챗GPT-4o’ 보완재로 탑재…독창성과 차별화 기반의 기존 혁신 이미지에 부정적

하지만 애플의 AI 전략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이면에선 부정적인 시각도 나오는 게 사실이다.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긴 어렵단 시각에서다. 실제, 텍스트 변환에서부터 사진편집과 이미지 검색, 이메일 및 메시지 작성 지원 등은 앞서 경쟁사에서 이미 제공하는 기능과 유사하단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을 비롯해 현지 일부 언론에서 “애플의 AI 진화는 혁명으로 보긴 어렵다”고 평가절하한 까닭이다.

무엇보다 시리에 애플 자체 AI 모델에 더해 오픈AI의 ‘챗GPT-4o’를 보완재로 내장시켰단 측면에선 체면부터 구겨졌다. 만약, 시리가 어려운 질문에 답을 해야 할 경우, ‘챗GPT-4o’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자체가 천하의 애플에 달가울 리 없단 얘기다. 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생존 당시, ‘애플=혁신’으로 통했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두기로 후진한 셈이다. 더구나 애플이 지난 2014년부터 완전자율주행 전기차 ‘타이탄’이란 코드명하에 추진했던 일명 ‘애플카’ 프로젝트까지 포기하면서 해당 인력들을 AI 부서로 대거 이동시킨 것으로 알려졌던 터였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5년간 애플카에만 1,130억 달러(한화 약 151조 원) 이상 투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선 껄끄러운 장면도 포착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애플과 오픈AI의 제휴는 수개월간 준비해 온 것으로 전해지면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실제 행사에선 잠깐 언급하는 데 그쳤다”고 평했다. 실제, 1시간 45분 이상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오픈AI의 챗GPT에 대한 설명은 2분가량에 불과했다. 아울러 이번 WWDC 행사에 초대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단상에서 별도 발언 시간을 배정받지 못한 채, 다른 참석자들과 동일하게 애플의 프레젠테이션만 지켜보고 떠나면서 어색한 상황을 연출했단 후문이다. 샘 올트먼 CEO는 생성형 AI 대중화를 앞당긴 ‘챗GPT’의 아버지로 요즘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인물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자사 행사에 몰린 이목이 자칫 오픈AI에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을 사전 차단한 각본으로 보인다”면서 “그간 쌓아왔던 애플의 명성에 비하면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모습이다”라고 귀띔했다.


허재경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