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숙명으로 아는 아프로디테에게 남편 헤파이스토스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한눈판 상대 가운데 전쟁의 신 아레스가 있다. 아프로디테는 남편 몰래 아레스를 불러들였다. 이를 눈치챈 헤파이스토스가 거미줄처럼 촘촘하고 쇠처럼 강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물을 만들어 침대 위에 몰래 걸었다. 두 사람을 꼼짝 못 하게 묶어버린 건 당연했다. 이 그물을 ‘스캔달론(scandalon)'이라 하고, 여기서 유래한 말이 ‘스캔들’이다.
세상에 스캔들 나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어떤 스캔들은 뜻밖의 큰 이득이 되는 경우도 있다. 원효와 요석공주의 만남은 온 경주를 떠들썩하게 했지만, 그래서 태어난 설총(薛聰)은 신라의 기둥이 됐다. 처용의 아내도 역신(疫神)과 내통해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으나, 결과는 역신 방어의 수호신 ‘처용 가면’이 탄생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보다 더한 사례가 비형랑(鼻荊郞)이다. 신라 진평왕 때의 이 비형랑은 반은 사람, 반은 귀신이다. 어쩌다 반인반귀(半人半鬼)가 됐는가. 사연을 알자면 바로 앞 진지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지왕은 진평왕의 삼촌인데, 20대 후반, 왕이 된 뒤 불과 4년 만에 쫓겨났다. 삼국유사의 기록인즉, 정란황음(政亂荒淫), 정치가 어지럽고 음란하기 그지없었던 까닭이다. 그런 사례 하나가 도화녀라는 여염집 여자와의 스캔들이었다. 복사꽃처럼 어여뻐 탐내다가, 퇴출 후 바로 죽었던 진지왕은 생전 이 여자를 잊지 못해 귀신으로 찾아오기까지 했다. 생사를 넘나들며 뿌린 희대의 염문이었다. 비형랑은 이 소동 끝에 태어났다. 귀신인 아버지와 사람인 어머니 사이에서 말이다.
비형랑은 낮에는 사람처럼 사람과 섞여 살고, 밤에는 경주 외곽 황량한 들판에서 귀신과 놀았다. 이 일을 진평왕이 들었다. 두 사람은 따지자면 사촌 형제지간이다. 왕은 비형랑에게 귀신을 부려 다리를 만들라 했다. 비형랑은 하룻밤 새 깔끔하게 놓아버렸다. 이름은 귀교(鬼橋). 비형랑의 활약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요술 방망이와 요술 램프가 따로 없었다. 뭐든 시키는 대로 어려운 일마다 척척 해결해 내는 나라의 일꾼이 됐다.
정말 귀신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났는지, 그런 질문은 다음에 하자. 호색한의 일생이었다 해도 ‘최소한 혈통값은 하자’는 생각에 혼령이나마 진지해진 진지왕의 마지막 노력에 눈길이 간다. 정가건 연예계건 스캔들 천지인 세상이다. 비형랑처럼 좋은 결과라도 얻자면 이만한 금도(襟度·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라도 지켰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