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지 없는 원외 당대표

입력
2024.06.14 16:33
18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국민의힘이 7월 전당대회에서 ‘당원투표 80%·일반국민 여론조사 20%’로 대표를 선출하고 현행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하기로 사실상 확정했다. 그러자 비윤석열 성향 잠재적 당권주자들은 일제히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을 견제하고 나섰다.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이란 말처럼 최대 변수가 한 전 위원장의 출마 여부이기 때문이다. 5선의 나경원 의원은 ‘원외(院外) 당대표 한계론’으로 견제하고 있다. 야당의 ‘입법독재’를 막아야 할 전장(戰場)이자, 정치의 중심이 국회인데 의원이 아닌 대표로는 약하다는 취지다.

□ 원외 당대표는 제왕적 총재 시절을 빼면 2004년 17대 총선 후 열린우리당 이부영 전 당의장이 처음이다. ‘한나라당 탈당파’였던 그는 낙선했지만 신기남 의장이 부친 친일 논란으로 사임하면서 원외인사로 의장직을 승계했다. 자신도 5개월여 뒤 ‘4대 개혁입법’ 좌초로 책임지고 물러났다. 원외로 익숙한 인물은 2007년 대선에서 패배한 대통합민주신당을 떠맡아 18대 총선을 치른 손학규다. 결과가 81석에 그치자 강원 춘천 농가로 칩거한 그는 2010년 다시 민주통합당 대표로 복귀한다. 2018년 바른미래당 대표로 또 한 번 부활하기까지 세 번의 대표가 모두 원외 신분이었다.

□ 국민의힘 계열에선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낙천된 뒤, 그해 전당대회에서 정몽준 전 대표를 제치고 당대표가 됐다. 이명박 정권 초기 ‘관리형 대표’가 필요할 때다. 최근엔 자유한국당 황교안, 2021년 6·11 전당대회에서 나경원을 꺾은 이준석 사례가 있다. 원외 당대표는 자신의 비전을 정책으로 연결할 수단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원내대표의 협조가 절실한 게 특징이다.

□ 연 1억5,500만 원(2022년 기준)의 세비가 없는 금전적 어려움은 물론이다. 아무리 잘나가는 거물 정치인이라도 ‘금배지’가 떨어지면 어딘가 권한이 약해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정치적 부침에 따라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도 원내에 있다면 덜 불안할 수 있다. 국회 동의 없이는 회기 중 체포되지 않는 특권은 핵심이다. 그러니 원외가 당대표가 되면 안팎의 눈총에도 재·보선 출마에 집착하게 된다.

박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