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낮 기온이 30도까지 오른 지난 12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황톳길에 주민들이 신발과 양말을 벗어 들고 맨발로 걷고 있었다. 이들은 한발 한발 조심스레 내디디며 까슬까슬한 흙의 촉감을 느꼈다. 중간중간 푹신하게 황토가 쌓인 곳에서 발마사지도 했다. 황톳길 끝에 마련된 신발장과 세족장에서 발에 묻은 황토를 씻어냈다. 주민 황용하(63)씨는 "황토라 그런지 바닥이 시원해서 여름철에 걷기 좋다"고 했다. 주민 김은경(57)씨도 "맨발로 걷는 게 건강에 좋다는데, 한두 번 만 걸어도 시원한 느낌이 든다"고 만족했다.
전국에서 '맨발 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 맨발이 땅에 직접 닿으면 건강 개선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어싱(Earthing·접지) 효과'가 알려지면서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서울과 부산 등 전국 주요 지방자치단체들이 맨발 걷기 지원에 나서고 있다.
서울 동작구는 '1동 1맨발 황톳길' 등 올해 구내 맨발 길 61곳을 조성할 계획이다. 서울 구로구도 연지근린공원 편백나무길에 450m, 개봉동 온수근린공원 잣절지구에 약 700㎡ 규모의 황톳길을 조성해 주민 맨발 걷기를 지원한다. 지난해 8월 '안산 황톳길'을 조성한 서울 서대문구는 방문객이 최근까지 35만 명 이상으로 인기를 끌자 구내 '천연동 황톳길' '가재울 맨발 길' 등을 추가 조성했다.
전국 243개 지자체 중 130곳 이상에서 맨발 걷기 지원 조례도 제정됐다. 지난해 2월 전북 전주시의회가 처음으로 '맨발 걷기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서울시의회에서도 맨발 걷기 지원 관련 조례가 지난해 7월 마련됐다. 부산시의회도 지난 2월 관련 조례를 통과시켰다.
전국 초·중학교에서도 맨발 걷기가 유행이다. 전국 500여 곳의 학교에서 맨발 걷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22년부터 맨발 걷기 시범학교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은 올해부터 희망하는 초등학교에 연간 운영비 800만 원을 지원한다. 올해 학교 24곳이 지원했다. 경남교육청도 올해부터 맨발 걷기 시범학교 10곳을 선정해 흙길 조성 비용 등을 지원한다. 27곳이 참여했다.
다만 우후죽순 늘어나는 맨발 길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맨발 걷기 효과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 20년 전에도 여러 지자체에서 지압길 등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하지만 관리 부실 등으로 이용이 줄면서 방치되거나 철거됐다.
2000년 9월 서울 중구 남산공원에 조성됐던 '맨발 공원'은 2011년 성곽길 복원 과정에서 사라졌다. 화강석과 옥돌을 깔아 지압할 수 있는 맨발길에 대한 주민 호응이 높았지만, 신발을 신고 지나가거나 유모차나 휠체어 통행을 방해한다는 민원 등이 제기되면서 결국 철거됐다. 맨발로 걷다가 유리조각 등에 찔려 다칠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황톳길 관리도 문제다. 황토의 경우 비가 오면 유실되는 양이 많아 배수구가 막힐 수 있다. 유실된 황토를 보충하지 않으면 맨바닥이 드러나 걷는 데 불편함이 커진다. 장마철 물웅덩이도 문제다. 비로 통행로가 미끄러워지면 낙상 위험도 있다. 반대로 건조해지면 황토가 굳고 갈라져 오히려 발 건강을 해칠 수 있다. 황톳길에서 반려견 분변을 맨발로 밟아 불쾌했다는 민원도 잦다.
전문가들은 맨발 길 관리가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홍근 건국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맨발 걷기를 하면 발에 자극을 줘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마사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서도 "황토가 굳어 있으면 완충효과가 없어 발바닥이나 발목에 손상을 줄 수 있고, 날카로운 돌 같은 이물질이 있다면 발바닥을 다칠 수 있어 맨발 길 관리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박동창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회장은 "굳이 맨발 길을 따로 만들기보다 자연 그대로의 숲길 등을 잘 정비하는 게 우선"이라며 "이미 조성된 황톳길도 잘 관리해야 주민들이 꾸준히 이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