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민심 오독(誤讀)한 민주당의 오만

입력
2024.06.13 18:00
26면

오직 이 대표 수호로 폭주하는 민주당
사법적 생존과 정치적 생존은 길항관계
정국 길게 보면 적절하게 제동 걸어야


‘줄 때 받아라.’ 그래도 정청래 의원은 4선의 제1당 최고위원이다. 이건 정치언어가 아니다. 일진놀이에 맛 들인 학폭 고교생이 약한 친구에게나 함부로 하는 말투다. 힘으로 (법사위원장) 빼앗았다고 징징대면 나머지도 싹 가져가버리겠다는 협박이다. "열차는 정시 출발하니… (강제 배분된) 국민의힘 법사위원님들께선 착오 없으시길”, 조롱까지 곁들였다.

친명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언사라 꺼낸 사례다. 여기에 끌어대는 ‘총선민심’은 더 기막히다. 그건 윤석열 대통령의 독선 오만과 부정의에 대한 심판이라는 게 이의 없는 결론이다. 그걸 민주당이 복사 재현하면서 민심이란다. 윤 대통령이든, 이재명 대표든 꼴 보기 싫은 짓은 똑같이 꼴 보기 싫은 것이다.

돌연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며 10여 건 법안을 폭포처럼 쏟아내는 모습도 생경하다. 국회가 언제 일하는 모습을 보였던가. 매 국회에서 민생법안 수백 건이 심사 방기로 폐기된다. 그래도 몽골기병의 기세로 처리하겠다는 시급 현안 맨 앞에 채 상병·김 여사 특검법을 두는 데는 별 이의를 달지 않겠다.

문제는 ‘대북송금 특검법’ 같은 것이다. 이 대표가 막 기소된 사건을 법원 판단 전에 헤집겠다는 초헌법적 발상이다. 나아가 사법체계 전체를 상시통제하에 두는 수사기관무고죄, 법왜곡죄까지 검토하겠다고 겁박한다. 이 정도면 오만의 극치다. 이 광기의 폭주 지향점이 이재명 수호에 있음은 물론이다. 이쯤에서 민주당은 근본적 질문을 스스로에 해보기 바란다. 이재명 수호가 곧 대선 승리일지를.

하도 엉클어놓는 바람에 착시가 생겨 그렇지 이 대표 거취는 정치 아닌 사법의 영역이다. 단식 등의 온갖 법석과 상관없이 그를 살린 건 영장판사의 ‘기이한’ 구속영장 기각이었다. 본인도 놀랐을 그런 행운이 앞으로 모든 사건에서 연속 재현되리라는 기대는 현실적으로 난망이다. 벌써 이화영 판결로 행운 가능성은 현저히 줄었다. 무리한 입법에 착안한 건 더는 행운에 기대기 어렵다는 위기감 때문일 것이다.

더 걱정해야 할 건 민심이다. 이 대표의 사법적 생존과 정치적 생존은 모순관계, 또는 길항관계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법리스크를 회피하려 무리수를 두면 둘수록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은 단축될 수밖에 없다. 일인 사당화(私黨化)에서부터 재판 지연과 사법절차 판단에 개입할 목적의 입법폭주,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오만과 독선은 하나하나가 민심의 이반 요인이다. 근원적 딜레마다.

윤 대통령 스스로가 일찍이 “총선에 지면 식물대통령이 된다”고 말했듯 이미 그 단계로 접어들었다. 국가권력의 그 빈 공간을 채워야 할 것은 마땅히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새로운 정치문화와 그에 걸맞은 지도자다. 윤 대통령의 장악력 약화로 국민의힘은 갈수록 유연해질 것인 데 반해 민주당은 이재명이란 상수가 존재하는 한 운신의 여지가 없다. 지금이야 거칠 것 없어 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치상황은 경직된 민주당에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그럴수록 민주당은 절박함과 공포로 더 강경해질 것이다. 인지부조화론이 말하는 게 그것이다. 물론 차기 대권은 멀찌감치 물 건너간다.

2년 전엔 다들 윤석열이 그런 사람인 줄 모르고 뽑았다. 지금은 이재명이 어떤 사람인 줄 너무도 세세히 알고들 있다. 윤 대통령에게 진저리를 치는 이들이 다음에 그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이 대표를 뽑아줄 것이라고 믿는다면 대단히 순진한 것이다. 이 대표에게는 기대가 없지만 민주당 안에서 누군가는 이 가망 없는 폭주에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한다. 이미 피로감이 크다.

이준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