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침체 늪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국에서 유독 폭발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시장이 있다. 중국 경제가 멈추다시피 했던 코로나19 3년을 포함해 지난 10년간 이 시장만은 끄떡없이 성장세를 이어갔다. 미국 투자기관 골드만삭스는 "경제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이 시장 투자 전망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름 아닌 '반려동물' 시장이다.
지난 8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대형 쇼핑몰 1층. 200평 남짓한 공간을 가득 채운 건 고양이 울음소리였다. 베이징 슈퍼캣협회(SCA)가 주최한 고양이 박람회가 열린 것이다.
투명한 플라스틱 고양이집에 100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전시돼 있었다. 먼치킨, 페르시안, 랙돌, 러시안 블루 등 다양한 묘종이 깃털이 달린 막대 장난감을 연신 앞발로 치며 놀고 있었다. 각 고양이 앞엔 "사람을 좋아함", "활동적" 등 해당 고양이의 특징을 소개한 팻말들이 걸려 있었다.
현장에선 고양이 직거래도 이뤄지고 있었다. 2세 미만 새끼 고양이의 경우 대략 3,000~4,000위안(약 56만~75만 원) 선에서 거래됐다. "얼마냐"는 관람객들의 물음과 "비싸다. 깎아 달라"는 흥정이 오가고 있었다. 수백 명의 관람객이 오가는 사이 고양이 구매에 흥미를 보이는 중국인 중에는 특히 젊은 여성들이 많아 보였다.
목에 방울이 달린 새끼 고양이에게서 유독 눈을 못 떼고 있던 30대 여성 양씨는 "최근 들어 주변에서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한 친구들이 부쩍 많아졌다"며 "예쁜 고양이들을 보니 왜 그런지 알겠다"고 말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반려동물이라는 개념 자체가 흐릿했던 중국의 반려동물 시장이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의 시장 조사 기관 아이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2015년 978억 위안(약 18조4,000억 원) 수준이었던 중국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2020년 2,953억 위안(약 55조8,000억 원)으로 급성장했다. 5년 새 덩치를 3배로 키운 셈이다.
중국 경제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며 각종 내수 지표가 하락세를 그렸던 코로나19 시기에도 반려동물 시장만은 예외였다. 2021년 3,942억 위안(약 74조5,000억 원)으로 늘더니 2022년엔 4,936억 위안(약 93조3,000억 원)을 기록했다. 아이미디어리서치는 2025년까지 8,114억 위안(약 153조3,000억 원)으로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예상대로라면 10년 만에 10배로 성장하게 되는 셈이다.
14억 명의 인구 대국답게 중국 반려동물 숫자도 이미 세계 최대 수준이다. 미국수의사협회 자료 기준으로 지난해 중국 반려동물(개·고양이) 수는 1억1,655만 마리로 추정됐다. 세계 최대 반려동물 시장인 미국(1억610만 마리)을 이미 뛰어넘었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 리서치앤드마켓은 중국 내 반려동물 수는 내년 2억 마리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10여 년 사이 중국에서 반려동물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인터넷포털 아이펑닷컴이 2021년 중국인 3,6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복수 응답 가능)에서 '왜 반려견을 원합니까'라는 질문에 '강아지가 일상생활에 즐거움을 준다'는 답변이 53%로 가장 많았다. 또 '귀여워서'(33%), '외로움을 달래주니까'(29%) 등 주로 애완견과의 정서적 교감을 이유로 꼽는 응답이 많았다.
다만 정서 차원만으로 중국의 반려동물 붐을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결혼·출산을 거부하며 혼자 사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중국 인구사회학적 구조 변화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1990년 1,700만 명에 불과했던 중국의 독거인구는 2018년 7,700만 명으로 늘었다. 당초 2050년 무렵 1억3,300만 명으로 늘 것이라는 전망이 무색하게 2020년 이미 1억2,500만 명을 넘어섰다. 경제적 압박에 몰린 청년층이 결혼을 포기한 탓이 크다.
지난해 중국의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치인 1.0명을 기록했다. 2022년 초혼자 수는 1,051만 명으로, 1985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1,10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거대한 경제적 압박 속에서 중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오랫동안 지속된 가족이라는 전통을 깨고 있다"며 "결혼·출산 대신 개와 고양이를 새로운 가족으로 맞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국 관영 CGTN이 '2019 중국 반려동물백서'를 토대로 한 분석을 보면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 중 절반에 가까운 43%가 1990년 이후 출생자로 조사됐다. 1980년대생은 32%, 1970년대생 16%, 1970년 이전 출생자 9%로 집계됐다. 반려묘 소유주의 경우도 비슷했다. 1999년 이후 출생자가 절반에 가까운 47.5%에 달했고, 1980년대생은 31.5%, 1970년대생 14.2%, 1970년 이전 출생자 6.8%로 조사됐다.
이는 미국과 대비되는 결과다. 미국 반려동물제품협회(APPA)에 따르면 지난해 반려동물을 키우는 미국인의 세대별 비율은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 33%, X세대(1965∼1980년생) 25%,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 24%, Z세대(1990년대 중·후반~2010년대 초반생) 16% 순이었다. 미국 반려동물 소유주가 세대별로 고르게 분포돼 있다면, 중국의 경우 20~30세 청년층 쏠림세가 뚜렷한 셈이다.
중국인 반려동물 소유주의 교육 수준은 높은 편으로 조사됐다. 반려견 소유주의 52.8%가 대졸 이상이었으며, 반려묘 소유주도 58.4%가 대졸자로 나타났다. 또한 성별로 따지면 반려동물 소유주의 88%가 여성, 남성은 12%로,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요약하면 △20~30대 △대졸 학력 △여성이 중국 반려동물 시장의 최대 고객이라는 뜻이다. 청년 세대의 독신 인구 증가세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골드만삭스는 "도시에 거주하는 중국 청년들이 중국의 또 다른 베이비붐 대신 강아지와 고양이를 집으로 들이고 있다"며 중국 반려동물 시장은 세계적인 경제 침체 속에서 보기 드문 유망 투자처"라고 짚었다.
중국 반려동물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고양이보다 개를 선호하는 선진국과 달리 고양이 수요가 더 크다는 점이다. CGTN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중국 반려견 수는 5,175만 마리로, 전년 대비 1.1% 늘어났다. 반려묘의 경우 6,980만 마리로, 같은 기간 6.8% 증가했다.
이는 다른 선진국 추세와 비교된다. 미국 조사기관 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의 반려동물 소유주 중 개만 키우는 비율은 49%이고 고양이만 키우는 비율은 23%에 그쳤다.
개와 고양이의 반려동물로서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개는 지속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 반면 고양이는 집에 혼자 둬도 문제가 없을 만큼 독립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반려동물을 홀로 두고 직장에 가야 하는 청년층이 고양이를 선호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들이는 속도에 비해 반려동물 노령화 대책은 미흡한 실정이다. 아이미디어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중국 내 반려견과 반려묘 평균 연령은 각각 2.7세, 2.2세다. 개 기대 수명(10~13세)과 고양이 기대 수명(13~17세)을 고려하면, 5~10년 뒤부터 건강 관리가 필요한 노령 반려동물이 급격히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반해 중국의 반려동물 병원 수는 미국수의학협회 추산으로 약 2만 개였다. 미국의 3만 개보다 적다. 중국 반려동물 수가 이미 미국을 추월한 점을 고려하면 반려동물의 건강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준비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