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확산 '베르테르 효과'... 자살 사망자 급증에 정부 "심각한 상황"

입력
2024.06.14 15:30
자살 사망 1월 33.8%, 2월 11.6%↑
작년 말 유명인 자살 후 '모방 자살' 분석
정부 "청년층 치료비 소득 무관 지원"

올해 1~3월 자살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했다. 지난해 연말 유명 연예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 이후 모방 자살이 확산한 영향으로 보인다. 정부는 심각한 상황으로 인식해 청년층 자살 시도자 치료비 지원을 확대하는 등 긴급대책 마련에 나섰다.

모방 자살로 모아지는 사망자 증가 이유

14일 오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8차 자살예방정책위원회'는 올해 1~3월 자살 사망자 증가 원인 분석 및 자살 예방 정책 보완 방안을 논의했다.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1~3월 자살 사망자가 3,794명(잠정치)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316명)보다 14%나 늘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1월 사망자는 1,321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987명)보다 33.8% 급증했다. 2월에도 사망자가 1,185명이라 지난해에 비해 123명(11.6%) 많다. 3월에는 1,288명이 숨져 증가율은 1.7%(21명)로 축소됐지만 이 같은 추세라면 지난해 연간 자살 사망자 수를 뛰어넘을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해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1만3,770명(잠정치)으로 2020년 이후 가장 많았다.

앞서 지난 4월과 5월 정신의학·응급의학·사회복지·심리·경제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두 차례 열린 '자살예방 전문가 자문회의'는 연초 자살 사망자 증가 원인으로 △유명인 모방 자살 △자살 재시도 증가 △코로나19 이후 우울·불안·경제난 △자살을 선택으로 인식하는 경향 등을 지목했다.

전문가들이 모방 자살을 첫 순위로 꼽은 것은 사망자가 급증한 1월에 여성(31명, 10.4%↑)보다 남성 사망자(303명, 44.0%↑)가 많았던 것과 무관치 않다. 자살한 남성 유명인과 비슷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생각해 유사한 방식으로 자살하는 '베르테르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형훈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관은 "남성 사망자가 늘었고 연령대는 30, 40대가 많다"며 "모방 자살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비상 걸린 자살, 청년층 자살 방지에 총력

정부는 신문, 방송, 뉴미디어 등 언론계에 '자살 보도 권고기준 3.0' 준수를 요청하고, 자살 고위험군 발굴 및 치료를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자살 시도자와 자살 시도율이 다른 연령대보다 높은 청년층 자살 예방에 초점을 맞췄다.

국립중앙의료원의 응급실 조사 기준 자살 시도자 가운데 2회 이상 반복 시도한 비율은 지난해 17%에서 올해 1~3월에는 27%로 상승했다. 전체 인구 10만 명당 자해·자살 시도율은 84.4명이지만 10대(160.5명)와 20대(190.8명)는 평균을 두 배 이상 상회한다. 자살 시도자의 자살 위험은 일반인보다 20∼30배 높다. 이에 정부는 정신건강 사례 관리에 동의하는 청년은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자살 시도로 인한 신체 손상 및 정신과 치료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는 중위소득 120% 이하만 지원 대상이었다.

아울러 경제적 요인, 수급 정보, 건강정보 등 유관 데이터를 연계해 세부 자살 사망 원인을 분석, 정책 근거도 강화한다. 복지부는 "현재 소득구간별 자살률, 복지서비스 수급 현황, 자살 시도 이력 등을 파악할 수 없어 원인 분석에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자살예방정책위는 '자살위해물건에 관한 고시' 개정안도 심의해 아질산나트륨을 자살위해물건으로 신규 지정했다. 2020년 49명, 2021년 46명이 숨지는 등 아질산나트륨을 이용한 자살이 증가하고 있어서다. 햄과 소시지 등 가공식품 보존·발색제로 사용되는 아질산나트륨은 소량만 섭취해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김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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