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의 통로, 인턴

입력
2024.06.13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영화 ‘인턴’에서 은퇴 후 아내와 사별한 뒤 적적한 삶을 살던 벤 휘태커(로버트 드니로)는 온라인 의류 쇼핑몰의 시니어 인턴십에 지원한다. 70세의 많은 나이에도 단번에 인턴으로 채용돼 젊고 야심 찬 여성 최고경영자(CEO)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의 비서로 일한다. 오랜 연륜을 토대로 한 그의 조언과 격려는 오스틴에게 큰 힘이 된다. 인턴이 세대와 신분을 넘어 서로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통로가 되는 동화 같은 스토리다.

□ 현실에서 ‘인턴’은 이렇게 낭만적이지도 훈훈하지도 않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비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한 중요한 스펙일 뿐이다. 취업준비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면 필요한 취업 스펙 항목으로 ‘인턴 경험’이 자격증과 함께 늘 1, 2위에 꼽힌다. 달랑 한 줄 인턴 경력을 적어 넣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다. 대학생들이 졸업을 미루는 것도 공백기를 없애기 위한 것도 있지만 주로 재학생 위주로 뽑는 인턴 경력을 쌓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금턴’(금+인턴)이라는 조어가 생긴 지도 이미 오래다.

□ 하지만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뚫기 쉽지 않다. 채용과 연계하는 채용형 인턴과 달리 체험형 인턴은 대부분 비공개로 뽑는다. 알음알음 채용하다 보니 소위 ‘빽’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문과 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진로인 로스쿨 진학에 필수 스펙으로 자리 잡은 대형 로펌 인턴은 금턴 중의 금턴으로 꼽힌다. 당연히 인맥이 없으면 뚫기 쉽지 않다. 로스쿨 재학생 64.7%가 로펌 인턴 경험에 부모 배경이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는 설문 결과(한국노동연구원)도 있다.

□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의 딸이 대학생 시절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인턴으로 일한 것이 논란이 됐다. 앞서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아들도 같은 코스를 밟았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자녀 또한 로펌 인턴으로 일했다. 누구도 ‘아빠 찬스’를 썼다고 인정하지 않지만, 곧이곧대로 믿기진 않는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아들은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로 있던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받기까지 했다. 사회적 지위는 그렇게 대물림된다.

이영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