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미국 대선에 각각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로 나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세 여론과 전통적 지지층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특정 계층에 영합하는 ‘표(票)퓰리즘’이 소신을 고집하는 것보다 박빙 승부에 유리하다는 심산에서다.
지난 4일(현지 시간) 바이든 행정부는 남부 국경에서 체포된 불법 입국자 수가 하루 평균 2,500명을 넘으면 불법 입국자에게 망명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예고했다. 대선을 앞두고 불법 이민 급증 현상이 정부 심판론으로 이어지자 바이든 대통령이 이민에 너그러운 원래 입장을 버리고 승부수를 던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곧장 예외 조치가 검토되는 분위기다. 미국 CNN방송 등은 입국 서류가 없는 미국 시민권자의 배우자가 대상인 ‘임시 체류 신분 부여’ 정책을 바이든 행정부가 곧 발표할 것이라고 10일 보도했다. 불법 체류자라도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했다면 합법적으로 미국에 체류하며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는 것이다.
이는 네바다, 애리조나 같은 대선 경합주(州) 승패에 중요한 라틴계 유권자층에 구애하려는 의도일 공산이 크다. CNN은 조치 시행 때 직·간접 영향권에 놓이게 될 75만~80만 명 중 대부분이 라틴계로 추정된다며 “정부가 라틴계 커뮤니티에 관심이 있음을 보여 주는 강력한 신호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전했다. 라틴계는 2020년 대선 때 바이든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핵심 지지층이지만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이탈 조짐이 가시화한 상태다.
진퇴양난 처지인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는 10일 미국 기독교 단체가 연합해 만든 댄버리연구소의 ‘생명과 자유’ 포럼에서 동영상으로 연설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댄버리연구소는 임신중지(낙태)에 관한 한 근친상간이나 강간으로 인한 임신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보는 급진적 반대 입장이다.
하지만 지난 4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임신중지 규제 수위 결정을 각 주에 맡겨야 한다’는 식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2022년 6월 대법원이 연방 차원 임신중지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뒤 각종 선거에서 해당 이슈가 민주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점을 의식했다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극우 성향인 자기 지지 기반의 상당 부분이 임신중지에 적극 반대하는 유권자라는 사실이었다. 댄버리연구소 측 연설 요청을 거부하지 못한 배경이다. 다만 사전 녹화한 2분짜리 동영상으로 연설을 갈음하고 임신중지 문제는 직접 언급하지 않는 식으로 절충했다.
격전지인 애리조나주의 공화당 전략가 배럿 마슨은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극단적인 임신중지 관련 입장은 이민과 경제 때문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애리조나 교외 고학력 보수 여성 유권자가 트럼프를 떠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지지층 모두를 단속하기 위해 전략적 모호성을 선택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