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명작 앞에서 알몸으로 다리를 벌려 예술계의 이목을 이끌었던 여성 작가가 자신에게 성적 모욕을 줬던 기획자를 10년 만에 '미투'(Me too)로 응징했다.
퍼포먼스 아티스트이자 사진작가인 데보라 드 로베르티스(40·룩셈부르크)는 10년 전인 2014년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세상의 기원’(1866년)이란 작품 앞에서 성기를 노출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세상의 기원’은 성기의 짙은 음모를 적나라하게 그린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프랑스)의 작품으로, 자궁의 입구, 즉 세상의 근원을 보여주는 리얼리즘의 대표 작품이다. 이 작품 앞에서 드 로베르티스는 맨발에 짧은 황금색 드레스를 입고 다리를 벌린 채 6분 동안 정면을 응시한 것이다. 그는 ‘여성의 음부를 그리는 것은 예술이고, 보여주는 것은 왜 외설이냐'고 반문한다. 그는 2017년에도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레오나르도 다빈치) 앞에서 같은 퍼포먼스를 하다 체포됐다.
그런데 예술혼에 불타던 그가 돌연 성적 모욕 이슈를 들고나왔다. 최근 퐁피두-메츠센터에서 열린 ‘라캉, 전시: 예술이 정신분석과 만날 때’에 여성 두 명을 보내 쿠르베 작품에 빨간 글씨로 '미투(Me Too)라고 써 놓은 것이다. 과거 자신의 파격적 퍼포먼스를 기획했던 큐레이터를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흥미롭게도 앞서 언급한 ‘세상의 기원’은 정신분석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자크 라캉(1901~1981·프랑스)의 소유품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엔 더욱 파격적인 그림이었기에, 라캉은 늘 커튼으로 작품을 가려놓고, 비밀스럽게 작품을 보여줬다고 한다.
이 전시는 라캉과 심리학에 대한 미술 전시인 만큼, ‘세상의 기원’은 물론 ‘기원의 거울’(Mirror of the Origin)도 선보였다. 기원의 거울은 드 로베르티스의 성기 노출 퍼포먼스 당시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둔 것이다.
하지만 순항하던 전시는 막바지에 흔들렸다. 드 로베르티스의 계획하에 2명의 여성이 전시장에 들어가 ‘세상의 기원’과 ‘기원의 거울'에 “ME TOO”라고 쓰는가 하면, 유명 설치 미술가 아네트 메사제(1943~·프랑스) 작품을 절도까지 한 것이다. 다행히 쿠르베 작품은 유리로 보호돼 있었기에 작품 손상은 없었지만, 강렬한 주홍 글씨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에 대한 고발처럼 쇼킹하다.
역사가 어떻게 판단할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음부를 드러내는 행위예술은 드 로베르티스가 처음이 아니다. 발리 엑스포트(1940~·오스트리아)는 ‘액션 팬츠: 생식기 패닉’(1968년)에서 앞 부분이 제거된 바지와 가죽 재킷을 입은 채 뮌헨의 예술 영화관에 들어가 좌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 사이를 거닐었다. 노출된 그의 음부는 관객 눈높이에 맞춰져 있어 관객이 도저히 피할 수 없도록 했다. 화면 속 수동적인 이미지 대신 '실제 여성'과 소통하란 도전이고, 당시의 소비주의와 기술 사회에 대한 대담한 페미니스트 성명이었다. 그의 작품은 현재 유명 갤러리에 의해 거래되고 있다.
그렇다면 드 로베르티스의 작품들 역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유명세를 타고 높은 작품 가격으로 이어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에 앞서 본질적인 걸 생각해야 한다. 미술산업이 점점 성숙해지고 탈세와 자금 세탁 등 부정적 이슈가 감소하고 있지만 논란을 일으킬 권력 구조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위상을 바탕으로 예술가에게 부당한 영향력과 권력을 남용하는 사례는 콜렉터, 비평가, 큐레이터 등에서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