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동아시아 이주 연구자들의 소규모 워크숍에 참여했다. 돌봄 노동자의 이주 현상, 이민 정책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논의의 저변에 한 가지 사실이 관통하고 있었다. 동아시아 각국의 유례없는 인구위기였다. 2022년 합계 출산율 0.87의 대만과 2021년 0.77의 홍콩, 2023년 4분기에 0.65를 기록해 끝내 0.7대도 무너져버린 한국. 끝을 알 수 없는 초저출생 현상이 동아시아에서 경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여러 요인 중 명백한 공통점 중 하나는 장시간 노동 관행이다. 전후 후발 산업국 일본의 뒤를 이어 '후후발' 산업국으로 전 세계를 주목게 한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 이들 성장의 원동력이 전력을 다하는 '일(work) 문화'였다는 믿음은 신화처럼 뿌리가 단단하다. 2022년 기준 유럽 27개국이 연평균 1,571시간, OECD 회원국이 1,752시간 일할 때 한국 사람들은 1,901시간 일했다. 그나마 2018년 주당 52시간 상한제 도입과 함께 2,000시간 아래로 내려온 것인데 그럼에도 한국보다 더 장시간 일하는 OECD 회원국은 칠레, 멕시코 등 남미 4개국에 불과하다. 이런 중에도 한국 정부는 코로나 이후 국제 사회에 퍼지는 '주 4일제 노동 실험'보다는 "주 52시간 상한제를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사실 일하는 사람들이 당면한 문제는 시간의 길이만이 아니다. 한국 기업들은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성과를 유지하려는 방식으로 경직적으로 조직을 운영해 왔다. 일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시간을 조정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때 만족감이 높아지고 창의성도 생길 수 있는데 그럴 여지가 없다. 일과 삶에 자신만의 균형도 찾기 어렵다.
10여 년 전 외국에 살던 시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저녁 8시만 되면 어김없이 자녀들을 잠자리로 보내던 친구들 모습이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싶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잠든 뒤 어른들이 대화도 하고 각자 할 일도 하면서 시간을 유용하게 쓰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이런 생활 패턴을 보기 힘든 것도 장시간 근로 관행 탓이다. 아이들은 기계처럼 정해진 시간에 잠들어주지 않는다. 부모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씻기고 먹이고 충분히 놀아주어야 비로소 잘 준비가 된다. 8시에 재우려면 늦어도 4, 5시에는 아이를 데려와야 하는 셈이다. 한국 직장인의 통상적 일상을 고려하면 아이들이 11, 12시에 자거나, 퇴근하는 부모를 보지도 못하고 먼저 잠드는 것이 정상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부모와 아이 모두 피곤하고, 후자라면 정서적 교감이 늘 부족할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 장시간 노동 관행은 경쟁적 사교육 문화로도 이어진다. 학교 끝나고 부모를 기다리며 '학원 뺑뺑이'를 할 수밖에 없던 아이들은 자연스레 '장시간 학습' 관행에 익숙해진다. 부모는 다시 자녀의 사교육을 지원하기 위해서 장시간 노동을 버틴다.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고 '일하는 여성'의 규범이 강해지는 한편에 다양하게 변주되며 지속되는 가족 내 보수적 성역할로 그간 어머니의 부담은 한층 배가되어 왔다. 부담이 임계에 다다르면 경력 추구의 바람이 꺾인다.
초저출생 현상이 빚어진 원인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아이 기르기의 즐거움을 의무와 피로가 압도하는 사회, 경력과 일자리 불안이 가시지 않는 사회에서 출산 장려금 몇 푼으로 출산율이 반전되기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다.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삶의 재생산이고, 삶의 재생산이 무너진 사회에서 일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누군가는 부족한 인구를 이주노동자로 메우면 된다고 손쉽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아시아 각국의 빠른 산업화와 인구위기다. 이 나라들도 언제까지나 한국의 인력 공급지일 수 없다. 이웃 아시아 국가의 사례들은 한국이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 대신 사회 및 조직의 폐쇄성과 보수성, 차별을 유지하는 한 매력적인 이주지가 되기 어렵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사회를 바꾸는 시간의 정치, 새로운 사회계약에 나서야 한다. 단기적 대책들은 그저 시간 낭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