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대 수험생에게 불법으로 과외를 한 뒤 대입 실기시험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과외한 학생들에게 높은 점수를 줬던 '비리 교수'들이 대거 적발됐다. 입시 브로커가 교수와 학부모들을 은밀하게 연계한 '삼각 커넥션'의 존재도 드러났다.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10일 입시 브로커 A씨와 현직 대학교수 B씨 등 17명을 검찰에 송치하고 이 중 B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대학 교수 5명은 서울대, 숙명여대, 경희대 등 서울에 있는 4개 대학의 실기 시험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자신들이 과외한 수험생들을 합격시키기 위해 고점을 준 혐의(업무방해)가 적용됐다.
이들은 A씨가 대관해 운영한 미신고 교습소에서 과외를 진행했다. A씨는 입시가 임박하자 교수의 과외 교습 횟수를 늘리면서, 교수들에게 수험생이 지원하는 대학을 알리거나 실기고사 조 배정 순번을 알리며 노골적으로 청탁했다. 교수들 역시 '과외 교습을 한 사실이 없다'는 서약서를 허위로 쓰는 등 과외 사실을 숨긴 채 대학교의 심사위원직 요청을 받아들였다. 교수들은 연습 곡목과 발성, 목소리, 조 배정 순번 등으로 교습했던 수험생을 알아내 고점을 부여하고 합격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입시 브로커 A씨와 교수들에겐 학원법 위반 혐의도 적용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서울 강남·서초구 일대에 음악 연습실을 대관해 미신고 과외교습소를 운영하면서 대입 수험생들에게 679차례 성악 과외를 했다. 이들을 비롯해 대학 교수 13명은 입시 브로커 A씨가 운영한 미신고 교습소에서 이른바 '마스터클래스'로 불리는 성악 과외를 한 뒤 244회에 걸쳐 1억3,000만 원 상당의 교습비를 챙긴 혐의를 받는다.
교수들은 30~60분의 과외 교습 후 교습비 명목으로 20만~50만 원을 현금으로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 교습소의 경우 인당 수강료가 5만 원으로 제한된다"며 "수험생이 1인 과외 교습으로 교수 레슨비, 반주비, 연습실 대관료까지 지급하는 구조로 소위 돈 있는 집안에서나 가능한 고액 과외였다"고 설명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브로커뿐 아니라 학부모나 학생이 교수에게 청탁한 사례도 적발됐다. 교수 B씨는 수험생 두 명에게 대학 입시 당일까지 집중 과외 교습을 진행했고, 대학 합격 후 학부모로부터 사례 명목으로 현금과 명품 핸드백을 받았다. 이때 합격한 학생 두 명은 대학 합격 후 해당 대학 성악과 교수의 제자가 되고자 비공식 오디션을 요청한 뒤 교수에게 사례비로 현금 등을 준 것으로 조사됐다.
현장에서는 음대 입시에 이런 관행이 만연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상곤 한국성악가협회 이사장은 "업계에 널리 퍼져 있지만 돈을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쉬쉬해왔다"며 "이번에야 수사로 인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반민심사교육카르텔척결특별조사시민위원회(반민특위)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이번 사건은 음대 입시비리 카르텔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교육부가 전면에 나서 입시비리를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대학에 수사 결과를 통보하는 한편 교육부와 대학에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학원법이 교원의 과외 교습을 제한하고 있지만 형사처벌이 약한 부분이 있어 행정 제재도 고려해달라고 교육부에 전했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은 대학에도 재발 방지책을 고민해달라고 전했다. 입시비리가 발생한 대학 관계자는 학생 퇴학이나 파면 등 후속 조치에 대해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고 적절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역시 보다 강력한 보안과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그간 소속 대학 교수가 입시 평가자가 되다 보니 '어느 교수한테 배워야 한다'며 접촉을 할 수밖에 없다"며 "소속 교수가 아닌 추첨으로 평가자를 뽑고 철저히 비밀로 유지하도록 처벌을 강화하는 등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