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가 이런 끔찍한 생각을 했던 걸까.’ 동물자유연대 송지성 위기동물대응팀장은 지난 1월, 강원 춘천시의 농지 일대를 돌아다니며 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밭 주변에 마련된 유기견 백구 가족의 임시 거처.
‘아마 여기서 백구는 덫에 걸렸을 것이다.’ 송 팀장은 확신했습니다. 임시 거처 바로 앞에 얕게 파인 구덩이에 검은색 철제 덫을 놓자, 덫은 구덩이 안에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덫은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백구 가족을 책임 지던 어미 개의 앞다리를 꽉 물고 놓지 않았던 잔인한 물건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덫이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백구는 도와주려는 사람의 손길도 절뚝이며 피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느껴진 건, 빠르게 구조가 이뤄진 점이었습니다. 백구는 덫이 풀숲에 걸려 옴짝달싹하지 못했고, 그 모습을 빠르게 포착한 구조팀이 빠르게 뜰채와 이동장을 이용해 백구를 포획한 뒤, 동물병원으로 급히 옮길 수 있었습니다. 송 팀장은 “악력이 강한 덫이 앞다리를 옥죌수록, 다리가 괴사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며 “최대한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절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송 팀장은 덫을 놓은 범인을 찾기 위해 구조 현장 주변 수색을 이어가면서도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백구의 상태가 매우 걱정됐다고 당시를 돌아봤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모두의 바람을 무참하게 배신했습니다. 괴사된 백구의 다리는 더는 회복할 수 없었고, 결국 두 차례 수술 끝에 다리를 절단하게 된 겁니다.
백구의 다리를 이렇게 만든 사람을 꼭 잡고 싶은 마음에, 동물자유연대는 고발장을 경찰에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범인의 행방을 찾지 못한 채 수사는 종결됐습니다. 송 팀장은 “이 덫을 사람이 밟으면 어쩔 뻔했겠느냐”며 “덫이나 올무를 불법적으로 사용해 동물을 포획하려는 행위는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는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관리 감독은 거의 없다시피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수술 이후 몸을 회복한 백구는 동물자유연대 ‘온센터’로 옮겨져 ‘백온이’라는 이름을 받아 정착했습니다. 입소 당시 백온이를 기억하는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그러나 이 활동가는 백온이의 두려움을 십분 이해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아무래도 백온이가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온 것 아니냐”며 “그런 와중에도 길 위에서 새끼를 출산하고, 양육을 하면서 당연히 경계심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기에 백온이에게는 몸의 상처만큼 마음의 상처도 깊게 남았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 활동가는 그것 또한 사람의 편견일지도 모르겠다고 돌아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불과 2주 만에 백온이의 눈빛이 달라진 걸 목격한 겁니다.
실제로 백온이는 낯선 뒷조사 전담팀이 견사 앞에 다가갔을 때도 처음에는 짖으며 잠시 경계를 했지만, 이내 간식 냄새를 맡더니 조용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예 편안하게 견사에서 엎드려 간식을 기대하는 천진한 표정을 짓기까지 했죠.
이 활동가는 “그만큼 백온이의 적응이 빠르고 기억력도 좋은 것 같다”며 앞으로 진행할 목줄 교육과 사회화 교육에도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적응은 빠른 편이지만, 그럼에도 아직 백온이가 보호소 밖을 나가는 산책까지는 다소 이르다고 합니다. 바깥에서 오래 지낸 만큼 목줄을 오래 하고 있는 데에는 적응이 다 되지 않은 탓입니다.
백온이가 나갈 수 있는 산책은 보호소 안에 마련된 야외 운동장뿐. 좁은 곳이었지만, 백온이에게는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 조심스러운 걸음이었습니다. 뒷조사 전담팀이 찾은 날에도 백온이는 홀로 야외 운동장을 사용하는 특권(?)을 누렸지만, 그 자유가 아직은 어색한지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냄새 맡고 야외 배변을 보는 일은 여느 강아지와 다를 것 없이 백온이에게도 기쁨이었습니다. 잠시 거리를 두고 백온이를 지켜봤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없다는 걸 알게 된 백온이는 좀 더 자유로워진 느낌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사람과 교감을 하며 굳이 눈치 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배우겠지만, 굳이 그것을 빠르게 앞당기려 하지 않는다는 게 활동가들의 방침입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백온이를 존중하는 의미였지요.
그렇기에 백온이의 가족을 찾는 일도 너무 서두르지는 않을 예정입니다. 물론 당장 입양자가 나오고, 백온이만을 위한 환경을 제공해 주는 가족이 나오는 게 최선이지만, 그것보다는 백온이의 하루하루를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게 현실적인 돌봄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활동가는 “백온이에게만 정성을 쏟거나 마음을 쏟아줄 수는 없는 환경이지만, 나름 전담 활동가가 있는 만큼 백온이도 우리를 믿어주고 있는 듯하다”고 돌아봤습니다.
그렇다면 백온이에게는 어떤 가족이 가장 적합할까요? 지금 누구보다 백온이가 가장 믿고 있는 이 활동가에게 물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