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즈'가 다른 인도 총선... 유권자 10억명, 투표소 105만 개

입력
2024.06.1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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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민주국가의 총선 이모저모]
코끼리, 낙타로 오지까지 투표용지 운반
투표 관리하는 인원만 1500만명에 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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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60910300005176)

인도 선거는 '지상 최대의 민주주의 축제'라고 불린다. 국민 모두에게 선거 참여를 보장하는 보통선거 실시 국가 중 유권자 수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사막에선 낙타에 투표장비를 싣고, 밀림에선 야생 코끼리가 길을 막아 선거 준비에 애를 먹이는 일도 다반사. 5년마다 국민의 대표 543명(하원)을 뽑는 인도 총선은 늘 다양하고 기상천외한 뒷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9일 타임스오브인디아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올해 인도 총선의 유권자 수는 9억6,900만 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다시 경신했다. 10년 전 2014년 총선과 비교하면 유권자 수가 1억5,000만 명 넘게 증가했다. 중국을 제치고 세계 인구 1위로 떠오른 인도의 덩치를 보여주는 숫자다. 실제 투표자 수도 6억4,200만 명을 기록했다.


그래서 선거기간이 무려 6주다. 유권자가 원체 많아 한꺼번에 투표를 하기 어려워, 인도 전역을 7개 구역으로 나눈다. 넓은 국토에 흩어져 있는 유권자에게 모두 투표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투표소가 약 105만 개(한국 22대 총선 투표소 1만4,259개)에 이른다. 인도 선거법에 따르면, 모든 유권자는 집에서 2㎞ 안에서 투표할 자격이 있다. 인도 선거관리위원회는 차량이 접근할 수 없는 오지까지 낙타, 노새, 코끼리 등을 이용해 투표용지를 운반한다. 선거관리에 투입되는 인원만 1,500만 명이다.

총선에 참가한 인도 정당이 이번 선거에 쏟아부은 비용도 약 144억 달러(약 19조 원) 이상으로 천문학적 규모다. 미 정치자금조사업체인 책임정치센터(CRP)에 따르면,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등 양당이 사용한 선거자금이 140억 달러였으니 인도 총선은 미 대선에 버금가는 '쩐의 전쟁'이다. 표심을 얻기 위해 유권자에게 무료 사은품을 뿌리는 프리비(freebies·공짜선물) 문화가 남아있다.

이런 특색 탓에 유권자들이 '이중투표'를 하는 등 부정선거 가능성도 늘 있다. 주마다 투표일이 달라 유권자들이 지역을 옮겨 다니며 여러 번 투표를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가 투표를 마친 유권자의 왼손 검지 손톱에 보라색 특수 잉크를 바르는 것도 중복 투표 방지를 위해서다. 해당 잉크는 인도 국립물리연구소가 개발한 것으로, 질산이 함유돼 있어 최소 4주 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인도는 1962년 총선 이후 현재까지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인도는 각 지역의 색깔이 강한 탓에 수많은 정당의 연합체로 정부를 구성하는 연립정부가 보편화돼 있다. 어느 한 정당이 원내 과반수를 차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인도국민당(BJP)은 16석을 차지한 텔루구데삼당(TDP), 12석을 얻은 자나타달(JD) 등 군소정당과 힘을 합쳤다. 모디의 최대 정적인 라훌 간디가 이끄는 제1야당인 인도국민회의(INC) 또한 26개 야당 연합인 인도국민발전통합연합(INDIA)을 결성해 대항했다.

모디 총리가 세 번째 연임에는 성공했지만, BJP가 단독 과반을 달성하지 못해 지역정당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연정 구성을 위해 다른 정당의 힘이 필요한 만큼, 군소정당의 요구사항이 국정에 더 반영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모디 총리는 그간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힌두교 우선 정책을 고수하면서 14%의 이슬람 교도를 의도적으로 배제해왔다. 종교 성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던 과거 총리들과 다른 모습이었다. 전문가들은 인도 국민들이 이번 선거에서 다양성의 가치를 훼손하는 모디 총리의 독주를 견제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산딥 미쉬라 인도 자와할랄네루대 동아시아센터 교수는 "모디 총리는 선거를 통해 약해졌지만, 인도 정치는 다양성이 커지면서 민주적으로 강해졌다"며 "대기업보다 중산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이 변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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