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향한 저항의 시선"… 6월엔 '카프카 읽기'로 세상 한번 바꿔볼까

입력
2024.06.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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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읽기 좋은 '제철 문학']
사후 100주기 서점가서 '카프카 열풍'
편영수 전 카프카학회장 서면 인터뷰
"카프카 읽기, 권력에 대한 저항 독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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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품에서 일기, 원고, 편지, 다른 사람이 가진 것과 내가 가진 것, 스케치 등 발견되는 것은 읽지 말고 남김없이 불태워 줘. 마찬가지로 자네가 가진 모든 글과 스케치, 또는 다른 이들이 가진 것으로 자네가 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모든 글이나 스케치를 남김없이 불태워 줘. 사람들이 자네에게 넘기지 않으려는 편지는 적어도 그들 스스로 불태우게 해 줘. 자네의 프란츠 카프카.”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24년 6월 3일 폐결핵으로 숨을 거둔 작가 카프카가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남긴 지켜지지 않은 유언이다. 카프카의 '친애하는 막스'는 그의 작품은 물론 짤막한 문장까지도 남김없이 출판했다. 막스의 배신은 생전 카프카가 그리도 원하던 '세계적인 작가'의 자리에 사후의 그를 올려놓았고, 또 사후 100주기가 되는 올해 6월을 전 세계가 마음껏 카프카를 읽는 계절로 만들어 냈다.

눈이 밝은 독자라면 이미 올해 초부터 서점가에 카프카의 이름이 붙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민음사의 카프카 드로잉 시선집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과 미완성 유작 등을 담은 '디 에센셜: 프란츠 카프카'를 시작으로 '우연한 불행'(위즈덤하우스) '변신·단식 광대'(문학동네) '프란츠 카프카: 알려진 혹은 비밀스러운'(소전서가) 등 10여 권의 작품집과 관련 서적이 나왔다.

사후 100년이 지나도록 왜 '카프카 세계'에는 해가 지지 않을까. "카프카 읽기는 권력에 저항하고 벗어나려는 시도를 감행하게 한다"는 것이 전 카프카학회장 편영수 전주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는 한국일보 서면 인터뷰에서 "카프카는 독자에게 혁명적인 투쟁을 직접 호소하지 않지만, 소외 의식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일깨운다"고 설명했다. 그의 대표작인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와 갑작스러운 재판에 휘말린 '심판(소송)'의 요제프 K, 세월이 흐르며 아무도 찾지 않는 ‘단식 광대’ 등은 모두 소외된 이들이었다.

편 교수 역시 1970년대 후반 처음으로 접한 카프카의 거대한 고문 기계를 둘러싼 '유형지에서'라는 작품에서 "권력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를 목도하게 됐다고 했다. 시대의 고발자이자 예언자로서 "지상의 마지막 경계까지 끊임없이 투쟁하는 영원한 아웃사이더" 작가 카프카에게 속절없이 빠져든 편 교수는 '카프카 덕후(마니아)'가 됐다. 그는 덧붙였다. "카프카 문학은 그 자체로 세상을 바꾸진 못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자극을 받은 독자가 움직일 때, 비로소 세상은 바뀌고 변화합니다."

올해는 카프카의 명성으로 인한 편견이나 미처 주목하지 못한 부분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편 교수는 "카프카를 문학에서 도피처를 찾는 내면의 작가, 죄의식의 작가, 불행의 작가, 심지어 조울증을 앓는 '유대인 환자'로 취급하고 카프카의 작품에서 비극의 기호를 읽어 내려는 이들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하지만 카프카는 현실의 공포에 굴복한 절망을 노래한 작가가 아니라, 글쓰기를 무기로 현실의 공포에 맞서 희망의 가능성을 탐색한 작가"라고 강조했다.

카프카 역시 1903년 12월 친구 오스카 폴라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제저녁 나는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어. 우리 인간은 온 힘을 쏟고 서로 사랑하면서 서로 도울 때만 지옥 같은 이 심연 위에서 그럴듯한 높이를 유지할 수 있다고." 그가 찾으려던 희망은, 결국 사랑에의 노력이었다.


편 교수가 뽑은 카프카의 ‘제철 문학’은?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 “카프카는 열네 살부터 생애의 마지막 해인 1924년 마흔한 살까지 꾸준히 시를 썼지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이 책은 카프카가 쓴 116편의 시를 최초로 한국어로 번역하고 한 권으로 묶어내 그의 문학 세계를 시의 영역까지 넓혔습니다. 카프카의 주목할 만한 시적 재능과 시인 카프카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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