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갱신요구권과 전월세상한제(임대차 2법)를 도입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다음 달로 시행 4년 차를 맞으며 전셋값이 폭등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 전셋값이 52주째 오르는 등 상승세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임대차 2법’보다 공급 부족이 문제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임대차 2법은 2020년 7월부터 시행됐다. 임차인에게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권리를 1회 보장하고 재계약 시 보증금 인상률을 5%로 제한한 것이다. 전세 계약이 통상 2년씩 체결되는 만큼, 임대차법 시행 후 4년이 지난 시점부터 신규 계약 물량이 쏟아지고 전셋값 인상률도 5%를 웃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서울과 인천을 중심으로 수도권 전셋값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부동산정보업체 경제만랩에 따르면, 서울에서는 6억 원으로는 ‘국민 평형(전용면적 84㎡)’ 전셋집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올해 들어 4월까지 체결된 서울 전용면적 84㎡ 아파트 전세 계약 가운데 전셋값이 6억 원 미만인 계약의 비중은 48.9%로 2011년 이후 가장 낮았다. 이 비중은 강남구에서는 6.9%까지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임대차 2법이 전셋값 상승세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면서도 문제의 핵심은 공급 부족이라고 설명했다. 고금리와 공사비 상승세로 수년간 신축 아파트 공급(착공)이 지연된 결과, 신축 입주 물량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전셋값이 오르면서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계약갱신요구권을 쓰는 가구가 늘었고 그 결과 신규 전세 매물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신규 입주 물량 자체가 인천에서만 절반으로 줄어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기는 매년 10만 호씩 입주했는데 내년 입주 물량은 5만 호 정도여서 전셋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셋값 상승세는 분명하지만 절대값 자체는 2년 전보다 낮다는 지적도 있다. 지방은 준공 후 미분양 물량 적체와 역전세난 우려가 여전하다.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면 임대인이 전셋값을 마음껏 올리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이 2021년 6월 말 전셋값을 100으로 놓고 산출한 전국 주간 전세가격지수는 지난해 5월 85에서 지난달 말 89까지 올랐지만 2022년 1분기(104)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임차인에게도 선택지가 있다는 얘기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임대인에게 보증금은 어차피 돌려줘야 하는 돈”이라며 “얼마 전까지 전세사기가 문제 됐던 만큼, 임대차 2법 4년 차가 됐다고 대폭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고금리에 매매 수요가 전세 수요로 바뀐 영향도 있다”고 덧붙였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도 “임대차 2법이 전셋값에 미치는 영향은 시행 후 2년까지 나타났지만 최근 희석됐다”며 “전셋값이 예전보다 낮기에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4년치 올려 받겠다’고 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팀장은 “전셋값을 잡으려면 다주택자 규제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매매와 전세를 동시에 잡기는 힘들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