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 그랩 바이크 기사 호앙타잉떠(48)의 하루는 오전 7시에 시작한다. 바삐 출근하는 직장인을 사무실 앞에 내려주고, 학생들까지 학교에 데려다준 뒤 잠시 한숨 돌리면 어느덧 점심시간. 이번에는 음식 배달 호출이 밀려든다.
오후 2시, 오토바이 위에 비스듬히 앉아 늦은 점심을 먹는 순간에도 행여 호출을 놓칠까 시선을 휴대폰에서 떼지 못한다. 한낮 기온이 섭씨 40도까지 오르는 5월은 1년 중 가장 괴로운 때다. 가만 있어도 땀이 비오듯 흐르지만 자칫 화상을 입을 수 있어 긴팔 점퍼를 벗을 수도 없다.
또다시 학생과 직장인을 태우고, 저녁 식사를 배달하고, 관광객을 태운 채 밤거리를 누비면 어느새 오후 11시다. 꼬박 16시간 도로를 달린 셈이다. 이렇게 벌어들이는 월수입은 약 1,700만~1,800만 동(약 92만~97만 원). 이 중 승차 공유 플랫폼 ‘그랩’에 내는 수수료 20%를 제하고 실제 손에 쥐는 수익은 1,300만~1,400만 동(약 70~75만 원) 안팎이다. 베트남 노동자 월평균 소득(약 710만 동·약 38만 원)보다 높다.
떠는 지난달 30일 한국일보에 “2010년부터 8년은 세옴(Xe Ôm·개인 오토바이 택시) 기사로, 이후부터는 그랩 기사로 살았다. 15년간 두 바퀴로 달려 아들 둘을 대학까지 보냈다”며 “높은 수수료도 부담이고 경쟁자가 늘어 벌이가 신통치 않은 날도 있지만 운전대를 놓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베트남, 특히 휴양지가 아닌 하노이나 호찌민 같은 도시에 처음 간 외국인은 무법 지대에 가까운 도로 모습을 보고 놀란다. 차선은 3개인데 차는 4, 5줄로 달리고, 몇 센티미터(㎝) 안 되는 차량과 차량 사이를 오토바이가 비집고 들어온다. 보행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와도 마음 놓고 건너기 어렵다. 오토바이가 요리조리 보행자를 피해 지나가기 때문이다.
인도 역시 사람을 위한 장소는 아니다. 한편은 이미 오토바이가 잔뜩 주차돼 있고 남은 공간으로는 꽉 막힌 차도를 피해 조금이라도 속도를 내려는 오토바이들이 내달린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오토바이 경적 소리와 무질서에 일부는 개발도상국의 후진성이 엿보인다며 고개를 젓기도 한다. 그러나 도로 위 오토바이 부대를 찬찬히 살피면 두 바퀴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베트남인들의 ‘진짜 삶’이 보인다.
오토바이는 베트남인의 발이다. 베트남 10가구 중 8가구 이상이 오토바이를 보유하고 있다. 한 집에 2대 이상 있는 경우도 다반사다. 출퇴근, 등하교 시간이 되면 도로는 오토바이로 가득 찬다. 일가족 4명이 오토바이 한 대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이나 만삭의 임산부가 거침없이 달리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린아이도 부모 품에 안겨 오토바이를 타는데, 조금 큰 아이들은 뒷자리에 앉아 운전자 허리도 잡지 않고 여유 있게 휴대폰을 보기도 한다.
떠처럼 누군가에겐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효자다. 택시 운송업, 물류, 택배, 화물업도 오토바이로 이뤄진다. 한국 택배 기사들이 트럭을 이용해 물건을 배송한다면, 베트남 택배 기사들은 오토바이 양쪽에 매달린 대형 포대 가득 물품을 싣고 달린다.
대형 화물이나 가전제품도 척척 옮긴다. 냉장고나 에어컨 실외기, 정수기용 생수통 수십 개, 심지어 침대 매트리스까지 얹어 달리는 모습은 ‘곡예’에 가까울 정도다. 종일 오토바이와 함께 일하는 이들은 오토바이 위에서 낮잠을 자거나 식사를 하기도 한다. 오토바이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닌, 삶 그 자체라는 의미다.
베트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구 6억 명 동남아시아에는 2억 대 이상의 오토바이가 달린다. ‘오토바이=동남아 역동성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오토바이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인구 대국 인도네시아다. 인구 약 2억7,000만 명, 등록된 오토바이는 약 1억3,000만 대다. 국민 절반이 오토바이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전체 승용차 수(약 1,700만 대)보다 7.3배나 많다.
인구 대비 비율로는 베트남이 더 높다. 인구가 1억 명인데 정부에 등록된 오토바이 수가 6,500만 대다. 한국 전체 인구보다도 많다. 성인은 물론 청소년까지도 오토바이를 한 대씩 갖고 있는 셈이다.
집집마다 보유한 비율로는 태국이 앞섰다. 지난해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조사한 ‘가구당 오토바이 소유 비율’ 상위 10개국 가운데 5곳이 동남아 국가였다. 태국 가구 87%가 최소 한 대의 오토바이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 뒤를 베트남(86%) 인도네시아(85%) 말레이시아(83%)가 바짝 쫓았다.
그만큼 이륜차 시장도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이륜차 통계 전문기업 모터사이클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동남아에서는 1,470만 대 오토바이가 새로 팔렸다. 전년 대비 3.6% 늘어난 규모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오토바이 시장 성장률을 보였다. 특히 인도네시아 판매량은 전년 대비 20.1% 늘었고, 태국(전년 대비 4.4% 증가), 캄보디아(2.4%) 역시 판매량이 늘었다.
동남아의 특별한 ‘오토바이 사랑’은 편의성+부족한 대중교통 인프라+낮은 소득 수준이 맞물린 결과다. 우선 버스나 지하철 등 이용이 쉽지 않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 하노이·호찌민(베트남), 방콕(태국) 등 주요 도시에 지하철이나 버스가 있지만 한국만큼 배차가 많지 않다. 지방은 그마저도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시아 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ESCAP) 2022년 조사를 보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민들의 하루 이동 수단 중 대중교통이 차지하는 비율은 25.3%에 그쳤다. 베트남 하노이(14.2%)와 호찌민시(7%)는 더 낮다. 청년들 사이에서 “애인은 없어도 오토바이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마저 나올 정도다.
게다가 좁은 골목도 빠르게 지나는 등 기동성도 좋다. 베트남 전철 시공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 건설사 관계자는 “오토바이가 주는 ‘도어 투 도어(추가 통행 없이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한 번에 이뤄지는 이동)’ 편리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대중교통이 생겼다고 탈 필요성을 느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소득 수준 대비 비싼 차량값도 오토바이로 눈을 돌리게 만든다. 글로벌 리서치그룹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의 자동차 산업 분석가 아루시 코테카는 BBC 인터뷰에서 “동남아 대부분 국가가 가계처분가능소득(PDI)이 낮아 자동차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동남아에서 오토바이는 선택이 아닌 생존 필수품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이륜차 이용이 환경 오염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각국은 자국 하늘을 뿌옇게 만드는 원흉으로 오토바이를 꼽는다. 자카르타에서 차량이 한 해 배출하는 탄소 규모는 2만8,317톤으로, 대부분 오토바이에서 나온다.
오토바이 한 대가 연간 3만2,000km가량을 주행하고 약 1톤의 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노이 역시 숨 막히는 대기 문제 원인이 오토바이 때문이라고 보고 2030년부터 수도 전 지역 내 유류 오토바이 운행과 진입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신 각국은 해결책을 ‘전기 오토바이’에서 찾는다. 동남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전기차 산업에 뛰어든 태국은 2030년까지 전체 자동차·오토바이 생산량의 30%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계획대로라면 연간 67만 대의 전기 오토바이가 도로에 추가된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도 대당 한화 80~100만 원 상당 인센티브와 보조금을 내걸고 전기차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베트남 빈그룹은 자회사 빈패스트가 만든 전기 오토바이를 앞세워 새 승차 공유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동남아시아 최대 벤처캐피털(VC) 이스트벤처스는 “현재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에서 전기 오토바이 판매량은 연간 전체 오토바이 판매량의 약 1% 수준이지만, 정부의 인센티브, 인프라 개선, 소비자 선호도 변화로 향후 몇 년간 연평균 복합 성장률(CAGR) 50%를 초과하는 급속한 성장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