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바이오 박람회인 '2024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바이오USA)'에서 '탈중국'을 둘러싼 각축전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추진하는 생물보안법 시행을 앞두고 중국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수주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의 강자인 우리나라도 역대 최다 기업이 참여해 적극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다.
3일(현지시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개막한 바이오USA에 한국 기업들은 역대 가장 많은 41개 사가 전시부스를 차렸다. 이번 행사에는 총 1만 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하고, 그중 1,400여 개 사가 부스를 차려 사전등록 관람객 1만8,000여 명을 맞이했다. 한국 국적 관람객은 1,000명을 넘겼고, 참여 기업 수 역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차지했다. 특히 올해는 미국 생물보안법 추진에 따른 우시바이오로직스, 우시앱텍 등 주요 중국 기업의 불참으로 한국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국내 CDMO 기업들은 기대했던 반사이익을 현실로 체감하며 열띤 수주 경쟁을 벌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세계 최대 생산능력(78만4,000L)을 넘어 맞춤 솔루션을 강조하며 중소 규모 수주에 심혈을 기울였다. 제임스 최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사장은 "고객 중심의 유연한 서비스 소개에 부스 디자인의 초점을 맞췄다"며 "사전 확정된 미팅만 85건으로, 빅파마뿐 아니라 작은 기업까지 모든 고객이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신규 위탁개발(CDO) 플랫폼인 '에스-텐시파이'를 공개했다. 첨단 배양기술을 적용해 고농도 바이오의약품 개발을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세포 농도를 평균 30배까지 높여 최종 생산량을 3~4배 늘리는 기술이 적용됐다. 2018년 CDO 진출 후 올해 1분기까지 116건을 계약한 가운데, 수주 가속화를 노리고 있다. 민호성 삼성바이오로직스 CDO개발센터장(부사장)은 "연내 플랫폼 3종을 추가 출시해 늘어날 수요를 대비하고 고객사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의 바이오 계열사들은 모두 첫 바이오USA 부스를 열어 수주 계약과 브랜드 알리기에 뛰어들었다. 세포유전자치료제 분야 CDMO 공장을 보유한 SK팜테코는 전년 우시바이오로직스 부스 자리를 차지하며 첫 진출부터 전시장 가장 좋은 입지에 깃발을 꽂았다. 이시욱 SK팜테코 최고전략책임자(CSO)는 "미국 필라델피아 우시 공장 근처에 우리가 인수한 CBM 공장이 있기 때문에 수주 영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SK바이오팜과 SK바이오사이언스는 함께 홍보관을 마련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 프레스티지바이오로직스, 에스티팜, 차바이오텍 자회사 마티카 바이오테크놀로지 등도 수주 미팅이 전년보다 확대됐다. 강주언 롯데바이오로직스 부문장은 "고객사들이 만나자마자 우시를 대체할 생산시설을 찾는다고 문의한다"며 "중국 생산 때문에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에 문제 생길까 우려해 대체 공장으로 바꾸려 한다"고 전했다.
일본도 공격적인 수주전에 나섰다. 후지필름과 JSR라이프사이언스(KBI바이오파마)는 각각 대형 전시 블록을 2개씩 쓰며 최대 규모의 부스를 자랑했다. 크리스틴 잭맨 후지필름 커뮤니케이션 이사는 "늘어나는 시장 수요 전망에 따라 시설 확장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미국 내 전략적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계속 투자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바이오를 국가 안보와 연계하는 분위기도 현장에서 감지됐다. 행사를 주관한 미국 바이오협회(BIO) 측이 윌리엄 맥레이븐 전 미국 특수작전사령관을 연사로 내세운 것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군인 출신 안보 전문가가 바이오 전시회 연사로 참여하는 건 미국이 바이오를 안보 관점에서 다룬다는 의미"라며 "기업들이 고군분투하곤 있지만, 이제 국가 차원에서바이오 안보 이슈를 깊고 정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