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휴머노이드가 맞벌이 부부의 아이를 돌보고 우주에서 생산된 대규모의 태양광 전기가 지구로 전송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의 수명은 100세를 넘기고···.
이런 상상은 더 이상 SF 소설에나 등장하는 공상이 아니다. 아직 상용화 단계는 아니지만 세계 각국의 연구실에서 치열하게 연구되고 일부 개발까지 이뤄진 최첨단 신기술들이 예고하는 미래다. 가족 같은 휴머노이드를 가능케 할, 인간의 뇌를 모방한 뉴로모픽 반도체만 해도 개발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고, 우주에서 전기를 생산해 지구로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도 확인되고 있다. 이런 기술들이 실제 상용화하면 노동력 부족이나 탄소중립 에너지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등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산업 전반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누른 지 10년 남짓. 인간 지능을 넘보는 인공지능(AI)이 눈 깜짝할 사이 세계 기술 패권의 바로미터로 떠올랐다. 이처럼 일상과 산업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잠재력을 가진 여러 기술이 연구실에서 꿈틀대고 있다.
특히 이런 신기술들의 지향점은 인간의 한계 극복이다. 차세대 AI는 인간 지능을 확장시키고,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의 노동력을 확장하고, 생명공학은 인간의 질병과 노화를 늦추고, 네트워크는 인간의 활동 영역을 넓힌다. 첨단 기술이 인류를 신체적, 사회적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류’로 진화시키는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취재진은 곧 다가올 신기술을 '초인류테크'로 명명했다.
올해로 일흔 살이 된 한국일보는 초인류테크의 가능성과 연구 현황을 살피고, 이 기술들이 불러올 미래를 한발 앞서 내다보는 기획시리즈를 6회에 걸쳐 게재한다. 지난 수십 년간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이 한국을 먹여 살린 바탕에는 선진국에 버금가는 기술력이 있었듯 앞으로 진행될 기술혁명 역시 우리의 일상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를 좌우할 열쇠다. 첨단기술 경쟁의 각축장에서 뒤처져선 안 된다는 취지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함께 5개월여에 걸쳐 시리즈를 준비했다.
취재진은 우선 KISTI 데이터분석본부 글로벌R&D분석센터(안세정 · 이준영 책임연구원) 및 미래기술분석센터(김소영 미래연구팀장)에 의뢰해 최근 15년 치 과학기술 논문 2,200만여 편의 데이터베이스에 KISTI가 자체 개발한 AI 알고리즘을 적용, 유망 기술들을 발굴했다. 여기에 네덜란드 라이덴대 과학기술학연구소의 기술 후보군 분류 기법, KISTI의 딥러닝 기반 미래 성장 가능성 예측 모델을 적용해 성장 확률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예측된 기술 후보군을 추렸다. 그런 다음 챗GPT가 만든 각 후보군별 논문 초록 요약본을 전수분석해, 이미 상용화가 상당히 진행됐거나 코로나19처럼 일시적인 영향이 컸던 것들을 제외하고 미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기술의 키워드들을 선별했다.
그간 학계에선 기술의 성장 추이를 예측하는 데 유용한 계량지표가 여럿 개발돼왔다. 취재진과 KISTI는 선별한 키워드들이 포함된 기술 후보군들에 학계에 보고된 다양한 계량지표를 적용해볼 수 있는 별도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그중 6가지 지표(부상성 점수, 총 논문 수, 복합 연평균 성장률, 최근 5년 한국 점유율, 지속가능성장 논문 비율, 논문 출판연도 평균)를 기준 삼아 최상위에 올라온 후보군과 키워드들을 살펴봤다.
이렇게 해서 △뉴로모픽 반도체 △2차원 물질 신소재 △리보핵산(RNA) △엑소좀 △사이버 보안 △무선 전력 전송 △공간 네트워킹 등 7가지 기술 분야를 추려냈다. 해당 기술이 성공적으로 개발된다면 우리나라가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고 평가할 만하다. 박진서 KISTI 글로벌R&D분석센터장은 "미래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데이터가 활용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전국 각지에서 이들 기술을 연구해온 전문가들을 찾아 나섰다. 그들이 그리는 궁극적인 미래 모습은 신기술이 만들어낼 ‘뉴 노멀’이다. 가령 2차원 물질 신소재가 뇌를 모방해 작동하는 뉴로모픽 반도체를 탄생시킨다면 사람을 빼닮은 AI와 전력 걱정 없이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효과를 각인시킨 RNA가 질병 예방을 넘어 치료와 진단에도 보편화한다면 의료 체계나 제약산업의 획기적 변화가 불가피하다. 또 통신 공간이 지구 밖 행성으로까지 확대될 미래 사회에 대한 대비도 시작해야 한다.
물론 공학적 난제나 사회적 수용성의 벽을 넘지 못하는 기술도 있을 터다. 그럼에도 그 잠재력을 주목하고 준비해야 이유는 기술이 만들어낼 변화의 폭이 예상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30년 전만 해도 상상에 머물렀던 ‘손안의 AI’가 지금 눈앞에 있듯 말이다.
초인류테크가 만들어갈 미래를 독자 여러분과 함께 색다른 방식으로도 고민해보고자 한국일보는 마지막 회에 초단편 SF 소설을 준비했다. 오늘부터 5회에 걸쳐 소개하는 신기술들이 뉴 노멀이 된 초인류의 삶을 작가의 시선을 통해 그려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