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한 공화당 의원들의 '트럼프 감싸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마다 않던 인사들마저 이번 유죄 평결과 관련해 사법부 비난에 가세하자 현지에선 "미국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미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추문 입막음 돈' 의혹 유죄 평결 이후 공화당은 사법 시스템을 향한 비난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대표적인 친(親)트럼프 인사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2일(현지시간) 폭스뉴스에 나와 "우리의 무기를 총동원해 반격하겠다"며 트럼프 방어를 선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한 앨빈 브래그 뉴욕 맨해튼지검장 등을 공화당이 오는 13일 의회 청문회에 출석하라고 요구한 것과 관련, 존슨 의장은 "검사들이 정치적 보복을 위해 하고 있는 일을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내 반(反)트럼프계로 꼽혔던 인사들마저 '정치적 의도'를 부각하며 사법부에 화살을 겨누고 있다. 과거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던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은 "특정한 범죄 행위 탓이 아닌 피고인이 트럼프였기 때문에 혐의를 제기한 것"이라며 브래그 검사장을 대놓고 저격했다. 2021년 1·6 워싱턴 국회의사당 폭동 사태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과 관계가 소원해졌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최근 "애초 기소 자체가 제기돼선 안 되는 것"이었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극성 지지자도 아닌 공화당 의원들이 앞다퉈 사법 불신 조장에 나서자 부작용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사법부 독립성을 유독 강조하는 미국에서 사법부를 압박하는 정치권 행태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 근간에 대한 위협이라는 것이다. 미 연방법원 판사를 지낸 제러미 포겔은 워싱턴포스트에 "독재 정권이 돼버린 국가에서 벌어진 공통적인 사건 중 하나는 독립된 사법부를 향한 공동의 공격이 있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로렌스 트라이브 하버드대 명예교수도 "법원에 대한 공격은 독재로 가는 길을 쉽게 열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사법 불신이 미국 사회 분열을 반기는 공산주의 독재 정권에 득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표적 수혜자로 꼽힌다. 과거 트럼프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보좌관을 지낸 피오나 힐은 AP통신에 "(트럼프 측의 사법 시스템 공격은) 오는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선전전을 펼치려는 러시아엔 완벽한 먹잇감"이라며 "푸틴은 아마 기쁨에 어쩔 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유죄 평결 직후 러시아 크렘린궁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정적(트럼프) 제거에 나섰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