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첫 여성 대통령’에 셰인바움 당선… “여성 영웅들과 함께 해냈다”

입력
2024.06.0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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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헌정사 최초… ‘마초 나라’ 유리천장 깨
좌파 정권 재창출... 중남미 ‘핑크 타이드’ 부활?
로페스 오브라도르 정부 정책 대부분 계승할 듯
카르텔 폭력·경제 악화·대미관계 설정 등 난제도

멕시코 차기 대통령에 집권당인 좌파 성향 ‘국가재생운동(MORENA·모레나)’ 소속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1) 후보가 당선됐다. ‘마초(남성우월주의)의 나라’ 멕시코의 200년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이다. 또 모레나의 정권 재창출 성공이 한동안 주춤했던 중남미 ‘핑크 타이드’(온건 좌파 정권 득세)의 부활 동력이 될지도 주목된다.

셰인바움 예비 득표율 60% 안팎... "압도적 승리"

2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멕시코 국립선거연구소(INE)는 이날 대선 결과에 대해 “예비 개표(무작위 표본 집계)에서 셰인바움의 득표율이 58.3~60.7%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우파 중심 야당 연합 소치틀 갈베스(61) 후보는 26.6~28.6%, 호르헤 알바레스 마이네스(39) 시민운동당 후보는 9.9~10.8%에 각각 머물렀다는 점에서 압승을 거둔 셈이다. 최종 결과는 5~8일 정식 개표 후 발표된다.

셰인바움은 “(나의 승리는)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에게 조국을 물려준 여성 영웅, 어머니, 딸, 손녀들과 함께 해낸 것”이라며 “당신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그는 10월 1일 새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할 예정이다.

이번 대선은 일찍이 멕시코의 ‘정치권 유리천장’을 깨는 역사적 선거로 규정됐다. ‘셰인바움 대 갈베스’ 2파전으로 치러져, 누가 승리하든 1823년 멕시코 공화국 수립 이래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 탄생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953년까지는 투표권조차 없었던 멕시코 여성들이 정치 분야에서 이룩한 엄청난 발전을 보여 준 선거”라고 평가했다.

에너지공학 박사·멕시코시티 시장 지낸 '엘리트'

1962년 유대계 과학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셰인바움은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 중남미 최고 명문대인 멕시코국립자치대에서 물리학과 공학을 공부한 뒤, 에너지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12월~2006년 6월 멕시코시티 환경부장관을 시작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고, 2018년 12월~2023년 6월 여성 최초로 멕시코시티 시장을 지냈다. 모레나 창당 멤버인 그는 ‘멕시코 첫 유대계 대통령’ 기록도 쓰게 됐다.

셰인바움은 △온건한 이민 정책 △친환경 에너지 전환 가속 △공기업 강화 등 현 정부 정책을 대부분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인기가 높은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현 대통령의 후광을 입기도 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2018년 우파의 약 90년간 집권을 끝내고 정권을 탈환했으며, ‘제2의 핑크 타이드’로 불리는 최근의 중남미 좌파 정부 연쇄 출범에 동력을 불어넣었다고 평가받는다. 핑크 타이드는 복지와 경제적 불평등 해소 등 전형적 좌파 정책 외에 사회·경제적 진보 정책에도 신경 쓰는 중도 좌파 또는 좌파 성향 정부라는 의미가 담겼다.

대선 당일도 폭력에 최소 2명 사망... 유혈 사태 '오점'

다만 셰인바움의 앞길은 험난하다. 국내적으로는 카르텔의 폭력이 그치지 않는다. 선거 기간 중 최소 25명의 후보자·선거운동원이 갱단 등의 습격으로 사망했으며, 투표 당일에도 여러 투표소에서 총격과 방화 등이 잇따라 최소 2명이 숨졌다. 올해 연방적자 6% 급증, 국영 석유기업의 막대한 부채 등 공공 재정 위험에 따른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

대외적으로는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가 중대 변수다. 특히 이민자 문제가 심각한데, NYT는 “바이든의 재선은 (미·멕시코 관계의) 연속성을 주겠지만, 트럼프가 당선되면 예측 불가”라고 내다봤다. 멕시코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유입되는 펜타닐 등 마약도 양국 관계의 위협 요인이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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