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는 유리병이라는 상식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페트병에 담긴 소주의 약진이 놀랍다. 편의점 페트병 소주의 시장 점유율이 2019년 30.4%에서 2021년 44.2%, 2022년 47%로 계속 증가하더니 지난해에는 드디어 50%를 넘어섰다. 이 정도면 가정용 소주는 페트병 소주가 거의 점령했고 영업용도 페트병 소주가 잠식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장례식장에 갔더니 페트병 소주가 나왔다는 지인들의 경험담도 자주 들린다.
페트병 소주가 증가하는 이유는 ‘홈술족’이 증가하면서 깨질 위험이 적은 페트병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주 도수가 낮아지면서 대용량 페트병 소주를 찾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도 있다. 소비자의 페트병 선호는 가정용 페트병 맥주나 청량음료 사례에서 이미 볼 수 있기에 새삼스럽지 않다. 그렇지만 너도나도 ‘바이바이 플라스틱’을 외치는 시대에, 재사용이 잘되고 있는 유리병이 페트병으로 넘어가는 것을 그냥 바라봐야만 하는 것일까? 일회용 플라스틱 컵 하나라도 줄이려고 아등바등 싸우는 사이 페트병 소주로 플라스틱 사용량은 오히려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한다고 말하면서 페트병으로 잽싸게 갈아타고, 심지어 페트병이 좋다고 소비를 부채질하는 기업들의 행태를 막을 수 없다.
페트병 소주의 증가는 현재 소주 및 맥주 유리병에 적용되는 빈용기보증금제도의 종말을 예견한다. 빈용기보증금제도는 유리병 제품에 100~130원의 보증금을 붙인 후 소비자가 빈 병을 반환하면 되돌려 주는 제도다. 반환된 빈 병은 세척해 다시 사용한다. 빈용기보증금제도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작동하는 용기 재사용 제도다. 빈용기보증금 제도는 유리병의 재사용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페트병과의 경쟁에서 유리병의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모순을 낳고 있다. 소비자가 빈 병을 반환하면 돌려주긴 하지만, 소비자가 구매를 할 때 100원의 추가 비용이 붙어 가격이 인상되는 듯한 착시효과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동일 용량이라면 페트병 소주가 유리병 소주에 비해 오히려 가격이 낮아 소비자의 페트병 선택을 부추길 수 있다.
독일의 보증금 제도는 일회용 페트병과 캔에 약 400원에 가까운 강제 보증금을 부과한다. 반면 재사용 유리병에 대해서는 그보다 훨씬 낮은 자율 보증금을 기업들이 붙이도록 함으로써 일회용 페트병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현재 우리나라 빈용기보증금 제도가 재사용 유리병이 페트병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부추기는 모순적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제도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맞다. 페트병 소주의 득세는 일회용 페트병에 대한 강제보증금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페트병 보증금제 도입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줄이고, 이를 사용하더라도 재활용률을 90% 이상 수준으로 높이고, 용기 내 재생원료 사용률을 지속적으로 높이려면 현재의 재활용품 분리배출 및 재활용 제도로는 무리라고 생각한다. 세계 흐름을 따라가면서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혁신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일회용 페트병에 대한 강제 보증금제 도입이 두려우면 페트병 사용을 줄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