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응징 '단골' 확성기 방송 엄포에 北 "삐라 날리면 오물 살포 재개" 도발 중단

입력
2024.06.0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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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2일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정부가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대응 조치에 착수했다. 확성기는 과거 대북 응징의 단골 소재로 꺼낸 우리 정부의 초강력 카드다. 무력 반격을 제외하면 수위가 가장 높다. '오물 풍선'을 1,000여 개나 퍼부은 북한의 이번 도발이 선을 넘었다고 평가한 것이다. 다만 북한이 돌연 "오물 살포를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하면서 정부도 대북 조치에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과거 군 당국은 천안함 피격(2010년),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폭발(2015년), 4차 핵실험(2016년) 당시 전방지역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군사분계선(MDL)에서 북쪽으로 20~30㎞까지 소리가 닿아 김정은 체제의 실상을 북한 주민들에게 적나라하게 알리고 K팝을 비롯한 한류 문화를 전파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확성기의 대북 심리전 효과는 나름 검증됐다. 2017년 6월 중부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북한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이 귀순을 결심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 이탈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접경지역 주민이나 군인들은 확성기 방송 때문에 고역을 치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에 북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2015년 8월 우리 군이 11년 만에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을 땐 경기 연천군에 배치된 확성기를 향해 조준사격을 실시한 전례도 있다. 확성기는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에 따른 상호 조치로 철거된 상태다.

하지만 북한이 윤석열 정부 들어 9·19 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하자 이후 대북 확성기 재개를 위한 법률 검토와 시설 점검을 실시해왔다. 엄효식 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확성기의 효율성과 적 공격을 회피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가 다 정해져 있는 상태"라며 "정부의 결심만 선다면 확성기 설치에는 길어야 한 달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북한의 오물 풍선이 전국을 덮치면서 상당수 국민들이 피해를 입은 것에 비하면, 북한 접경 지역 일부에 영향을 미치는 데 그치는 확성기가 '비례성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우리 접경지역 주민들의 불안과 고통도 고려해야 한다.

이에 북한을 더 압박할 추가 대응 조치로 대북 전단 살포가 거론된다. 민간단체를 통할 수도, 아니면 은밀하게 정부가 직접 할 수도 있다. 김정은 체제의 실상을 고발하는 유인물 외에 한국의 영상물이나 가요 등이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를 북한 전역에 유포하는 방식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외부 정보, 특히 한류 문화의 북한 내 유입에 따른 체제 균열을 극도로 경계하는 만큼 타격이 상당할 수 있다. 북한은 최근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 청년교양보장법(2021), 평양문화어보호법(2023)을 잇따라 만들어 한국 영상물 시청, 한국 말투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실제 북한은 이날 오물 살포를 돌연 중단한다고 밝히면서 대북 전단의 파급력을 스스로 인정했다. 김강성 국방성 부상 명의 심야 담화를 통해 "반공화국 삐라 살포를 재개하는 경우 백배의 휴지와 오물을 다시 살포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대북 확성기를 응징수단으로 먼저 거론했는데, 북한은 확성기가 아닌 대북 전단의 위험성을 경계한 셈이다.

정부와 군 당국은 북한의 도발이 지속될 경우 반격 수위를 더 높일 참이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오물 풍선이나 위성항법장치(GPS) 공격 등 실질적으로 우리 국민의 인명과 재산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지 않지만 불쾌하고 소소한 '회색지대 공격'들에 대해 건건이 대응하는 건 그들의 노림수에 빠지는 것"이라며 "북한과 달리 정상적인 국가로서 취할 수 있는, 종합적인 차원의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엄 사무총장은 "북한의 입장에서 가장 예민하고 까다로운 방식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며 "확성기, 전광판, 대북 방송 등 이미 나왔던 대응책에서 한발 나아가 북한의 예측을 뛰어넘을 수 있는 대응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경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