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제가 첫 소설을 발표한지 삼십 년 된 해입니다. 그동안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과 연결돼 있었다는 것이 때로 신비하게 느껴집니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더 먼 길을 우회해 계속 걸어가보려고 합니다."
소설가 한강(54)은 호암재단이 31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연 2024 삼성호암상 시상식에서 이 같은 소감을 밝혔다. 작가는 한국 현대사의 고통과 슬픔,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을 섬세한 시선과 독특한 작법으로 표현해 세계인의 공감을 산 점을 인정받았다. 역대 호암상 가운데 가장 많은 네 명의 여성이 이날 상을 받았으며 시상식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년 연속 참석했다.
공학상 이수인(44) 미국 워싱턴대 교수, 과학상 화학·생명과학 부문 혜란 다윈(55) 미국 뉴욕대 교수, 과학상 물리·수학 부문 고(故) 남세우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연구원, 의학상 피터 박(53)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 예술상 한강 소설가, 사회봉사상 제라딘 라이언(76) 수녀 등 수상자는 각각 순금 메달과 상금 3억 원을 받았다.
아일랜드 출신의 라이언 수녀는 50년 넘게 전남 목포시를 중심으로 의료 봉사와 장애인 복지사업에 헌신하면서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를 실천했다. 그는 "장애인이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며 동등하게 일할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장애인과 가족, 후원자, 봉사자와 함께 노력해 왔다"며 "장애인의 삶을 중요하게 만드는 데 많은 이가 함께 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인공지능(AI) 판단 및 예측 과정을 이해하고 결과를 알려주는 '설명 가능한 AI' 분야에서 'SHAP' 방법론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많은 분들이 저의 호암상 수상과 AI 연구에서 영감을 받아 공학자의 길을 선택하고 도전적 연구를 통해 과학, 의학, 사회 및 인류가 직면한 중요 문제를 해결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미생물학자인 다윈 교수는 단백질 분해 시스템이 결핵균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힌 공으로 상을 받았다. 그는 "부모님께서는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임을 늘 말씀해 주셨다"며 "미국 내 생명과학 분야에서 한국인을 찾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데 호암상이 꿈을 좇는 전 세계 한국 과학자에게 격려가 된다"고 말했다.
남 연구원은 세계 최고 효율의 단일광자 검출기를 개발해 양자역학과 양자정보과학 분야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고인이 된 그를 대신해 배우자인 킴벌리 브릭먼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연구원이 상을 받았다.
박 교수는 세포의 방대한 유전자(DNA) 정보를 분석하는 컴퓨터 분석법을 개발하는 등 생물 정보학 분야 발전에 이바지한 점을 인정받았다. 박 교수는 "대학원생, 박사후 연구원, 동료 교수님 등 유능한 사람들과 함께 연구한 것은 큰 축복"이라며 "암과 여러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계속하며 한국 학생들이 더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생각해 보고 있다"고 밝혔다.
천진우 연세대 언더우드 특훈교수가 시상식에서 심사 보고를 했으며 수상자 가족 등 270여 명이 참석해 박수를 보냈다. 삼성호암상 수상자는 국내외 학자 및 전문가 46인이 참여한 심사위원회와 외국인 석학 65인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가 넉 달 동안 심사해 뽑았다.
이날 시상식에는 이재용 회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훌륭한 분들을 수상자로 모시게 된 것을 큰 기쁨이자 자랑으로 생각한다"며 "올해 수상자는 여성이 전체의 3분의 2로 역대 최고인 네 명에 이르러 우리 사회의 변화와 발전의 다른 면을 보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하다"고 했다.
삼성호암상은 호암 이병철 창업주의 인재 제일주의와 사회 공익 정신을 기리기 위해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이 1990년 제정한 상으로 34회를 맞았다. 수상자들은 전날 삼성호암상 제정 이후 처음으로 삼성 임직원을 대상으로 특강도 했다. 이 자리에는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서울병원 등 임직원 3,600여 명이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