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이집트·가자지구 국경의 완충 지대인 '필라델피 통로'(Philadelphi corridor)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밝혔다. 유엔 최고법원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라파 공격 중단' 명령을 내렸음에도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서의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과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방위군(IDF) 수석대변인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28일(현지시간) "필라델피 통로에 대한 작전 통제권을 확립했다"고 밝혔다. 필라델피 통로는 이집트·가자지구 국경을 따라 나 있는 길이 14㎞의 완충 지대를 일컫는 이스라엘 코드명이다. 2005년까지 이스라엘이 통제하다 이후 이집트 쪽은 이집트가, 가자지구 쪽은 하마스가 관리해왔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필라델피 통로 곳곳에 설치한 지하 터널을 통해 무기를 가자지구로 들여오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가리 소장은 필라델피 통로를 "하마스의 산소 공급선"이라고 칭하며 "지금까지 지하 터널 약 20개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이집트 국경에서 불과 10여m 떨어진 곳에서 로켓 발사기 수십 대도 발견됐다고 IDF는 주장했다.
필라델피 통로에서의 IDF 작전은 미국과도 사전 공유됐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그들(IDF)은 선별·제한적으로 하마스의 뒤를 쫓겠다는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이는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이집트는 필라델피 통로가 하마스 무기 밀반입 경로라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부인한다. 이집트 고위 소식통은 이집트 알카헤라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은 라파 공세 및 전쟁 연장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이집트·가자지구 사이에 터널이 있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이집트의 불쾌감을 알면서도 이스라엘은 군사 작전을 포기·완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차히 하네그비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은 이스라엘 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집트인과 함께 가자지구로의 무기 밀수를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필라델피 통로가 이스라엘·이집트 사이 새로운 긴장을 조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라파 국경 검문소를 포함하고 있는 필라델피 통로가 이스라엘 손에 넘어가면서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졌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필라델피 통로에서 이어지는 알 라시드 해안도로를 통한 구호품 배포에 문제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라파 공세를 더 강화할 작정이다. 아미르 아비비 국방안보포럼 의장은 "군사·안보상 '결정적인 전투'가 라파에서 일어날 것이며, 라파 점령은 (하마스) 붕괴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네그비 보좌관은 "가자지구 전투는 최소한 올해 내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무력감은 깊어지고 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정책 고위대표는 이스라엘이 ICJ 판결을 모르쇠한 채 라파 공세를 강행하는 데 대해 "국제질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취약하다"며 "국제질서가 심각한 시험대에 올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