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유우성 기소 위법했지만, 검사 탄핵할 정도 아냐"

입력
2024.05.3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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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완 검사 탄핵청구 '5대4' 기각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인 유우성씨를 '보복 기소'한 혐의로 탄핵소추된 안동완 검사에 대한 탄핵 청구가 기각됐다. 안 검사가 유씨를 기소한 건 '공소권 남용'(검찰의 기소가 자의적이라 기소 자체가 적법하지 않다는 것)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다수였지만, 이것만으로 검사를 파면할 정도의 중대한 잘못은 아니라고 보는 헌법재판관이 더 많았다.

헌재는 30일 국회가 안 검사를 상대로 제기한 탄핵 심판을 헌법재판관 5대4 의견으로 기각했다. 이번 사건은 헌정 사상 최초의 검사에 대한 탄핵심판이었는데, 탄핵으로 판단한 헌법재판관이 탄핵 인용 정족수인 6명에는 모자랐다.

안 검사의 탄핵 사유는 유씨에 대한 '보복 기소' 의혹이었다. 2013년 탈북민 출신 서울시공무원 유씨를 간첩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한 검찰은 1심에서 유씨가 무죄를 선고받자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넘겨받은 유씨의 '북중 출·입경 기록'을 2심 재판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이 기록이 위조된 것으로 드러나, 유씨는 2015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위조된 기록으로 수사를 하고 공소유지를 한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 검사 3명이 징계를 받았다. 안 검사는 2010년 기소유예(혐의는 인정되나 죄질이 가벼워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것) 처분을 내린 유씨의 대북송금 사건(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을 다시 수사해 2014년 5월 추가 기소했다.

이에 유씨는 보복기소를 주장했고, 대법원도 2021년 10월 "기소유예 처분 4년이 지나서 이를 번복하고 다시 기소할 의미 있는 사정변경이 없다"며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국회는 지난해 9월 대법원의 '공소권 남용' 판결을 근거로 안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이번 탄핵 심판에서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은 유씨를 기소한 것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은애 재판관은 "안 검사는 유씨가 북한에 송금한 액수가 기소유예 처분에 비해 줄어들었고, 주요 범행 내용이 달라지지 않은 사정 등을 알면서도 유씨를 기소해 옛 검찰청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정정미 재판관은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이자 인권옹호기관인데도 유씨에게 실질적 불이익을 가할 의도로 공소를 제기한 것은 형법상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탄핵에 이를 정도까지 중대한 잘못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김기영 재판관 등 4명은 "안 검사 때문에 검사의 권한 행사 및 형사사법 전체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또 한 번 심각하게 훼손돼 검사에 의한 헌법 위반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엄중히 경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종석·이은애 재판관은 파면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이들은 "안 검사가 법질서에 역행하려고 법률을 위반했거나 실체적 진실에 반하는 국가형벌권 행사를 도모한 건 아니다"며 "직권을 남용한 공무원도 파면보다 가벼운 징계를 받을 수 있는데, 안 검사가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면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두 재판관은 "유씨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를 법원이 일부 인용한 점 등을 고려하면 공소권 남용의 재발 가능성이 높지 않아 부당한 권한 행사를 통제하는 탄핵 심판의 목적이 어느 정도 구현돼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영진 김형두 정형식 재판관은 유씨 기소가 정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들은 "유씨에 대한 추가 고발이 있었기 때문에 안 검사는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여지가 있다"며 "종전 기소유예 처분에서 누락된 거래내역이 밝혀지는 등 공소를 제기할 사유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기소유예 처분 사건을 다시 기소하는 게 공소권 남용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선례가 없었던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재판관 3명이 유씨 기소를 정당하다고 본 것까지 합하면 재판관 네 명만 탄핵 청구 인용 의견을 낸 것이다.

이종석 등 5명의 재판관들은 이번 결정을 계기로 탄핵심판 청구기간에 관한 규정을 정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내놨다. "공직자가 직을 보유하는 한 언제든지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는 현행법은 공직수행의 안정을 해친다"는 이유다. 안 검사가 유씨를 추가 기소한 건 2014년 5월인데, 9년이 지난 지난해 9월 국회는 그를 탄핵소추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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