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합성 마약 생산과 유통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을 비롯한 각종 마약이 대거 압수되고 마약 사범 수가 크게 늘면서 더 이상 ‘마약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이 재차 확인됐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29일 연례 아시아 지역 마약 현황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동아시아·동남아에서 190톤에 달하는 필로폰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전년(151톤)보다 약 40톤이나 늘어난 양으로, 연간 압수량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약 98톤은 알약 형태로, 90톤은 결정체 형태로 발견됐다. 상당 부분은 미얀마 군부와 소수민족 무장단체 사이 교전이 이어지는 북부 샨주(州)에서 생산된 뒤 태국·미얀마·라오스 접경 지대 ‘골든 트라이앵글’을 통해 인도차이나반도로 퍼져 나갔다.
같은 기간 케타민(23톤), 엑스터시(MDMA·2,670만 정) 등 다른 합성 마약도 다량 압수됐다. 모두 압수량이 예년 대비 2, 3배 늘었다. 케타민의 경우 필로폰처럼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에서 생성됐고, 엑스터시는 유럽에서 들어왔다고 UNODC는 설명했다.
합성 마약은 하늘과 바닷길을 통해 한국, 일본, 홍콩, 호주 등으로 퍼져나갔다. 보고서는 “지난해 적발된 필로폰 가운데 약 1톤은 해상에서 압수됐다”고 설명했다. 아시아 지역 불법 마약 생산·판매 경제 규모가 연간 800억 달러(약 109조 원)에 달한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유엔과 아시아 각국이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이를 비웃듯 마약은 더 많이, 더 빨리 만들어지고 확산되고 있었다. UNODC는 마약 조직이 생산량을 매년 늘리면서 가격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기준 동남아 지역 내 필로폰 도매 가격은 1㎏당 400달러, 1정 소매 가격은 1~2.5달러 수준이었다.
마수드 카리미푸르 UNODC 동남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는 “범죄 집단은 통제되지 않은 화학 물질을 사용해 (마약) 생산 비용을 낮추고, 규모를 늘리고 있다”며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전 세계에서 물가 상승세(인플레이션)가 거세고 각국이 많은 양의 마약을 압수하고 있지만 필로폰과 케타민 가격은 매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케타민, 엑스터시, 벤조디아제핀 등이 혼합된 신종 합성 마약이 알약이나 가루 같은 형태가 아니라 음료(해피 워터)나 사탕(파티 롤리팝) 형태로 등장하고 있는 점도 우려했다. 청년들이 파티 등에서 마약이라고 인지하지 못한 채 섭취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이 더는 마약 청정지대가 아니라는 점도 보고서를 통해 확인됐다. 지난 한 해 한국에서 압수된 필로폰 양은 615.8㎏으로, 1년 전(343㎏)보다 79.6% 늘었다. 마약 투약으로 당국에 체포된 사람도 2018년 7,258명에서 지난해 2만7,611명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투약자 10명 중 7명(70.8%)은 필로폰 등 향정신성 마약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한국 내 필로폰 투약자 수가 6년 연속 증가하면서 한국 마약 복용자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며 “지난해 한국의 대마, 케타민, 헤로인 압수량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한국에서 적발된 전체 마약 사범 10명 중 1명(11.4%·3,153명)은 외국인이었다. 태국(36%) 중국(25%) 베트남(20%) 국적이 가장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