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박정훈 대령(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이 ‘채 상병 사망사건’ 조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11시 50분 완료)하고 보직 해임되던 시점 직전과 직후,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세 차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VIP격노설’에도 침묵했는데, 이번 통화에 대해선 직접 설명이 필요해졌다. 이 전 장관도 진실을 말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에 성실히 임해야 함은 물론이다.
박 대령의 항명죄 재판이 진행 중인 중앙군사법원에 제출된 통신사실조회 회신 결과를 보면, 작년 8월 2일 윤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 출장 중이던 이 전 장관과 낮 12시 7분부터 57분까지 3차례 18분여간 통화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통화 사이 박 대령은 보직 해임 통보(12시 45분)를 받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화 통화 사실 자체가 특별한 증거가 되기는 어렵다”고 했고, 이 전 장관 측도 “통화 기록 중 눈초리를 받을 부분은 결단코 없다”고 말했다. 납득하기 힘든 원론적 설명으로는 이번 통화 문제가 해소될 수 없다. 당시 정황이나 통화 방식에 비춰 봐도 수긍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검사 시절 사용하던 개인 휴대전화로 해외 국무위원에게 집중 전화하는 게 흔한 일인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문제의 통화 기록은 ‘채 상병 사태’의 외압 정황의 증거란 점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 전 장관은 이후 8월 4~7일에는 경찰 조직을 관리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김용현 대통령 경호처장과 각각 5, 7차례 통화한 것으로 나타나, 후속조치 논의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젊은 해병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은 엄정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적 분노로 번진 사단장 구명에 급급한 사건처리 과정 의혹부터 해소돼야 한다. 이 전 장관 등은 수사 외압(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는데, 지금까지 나온 증언과 통화 기록을 보면 윤 대통령의 의혹에 대한 직접 해명 또는 조사가 불가피해졌다.
과거 권력형 의혹 사건들은 진실을 감추고 은폐할수록 의문은 커지고, 권력은 불신의 수렁에 빠져드는 길을 걸었다. 채 상병 의혹도 지금대로라면 특검 여론에 더욱 불을 지피고, 윤 정부 국정운영의 늪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