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연립정부 구성 정당들이 차기 총리로 '안보 관료'를 낙점했다고 깜짝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총선 이후 정치적 분열을 거듭하다 국가 최고위직을 정치인이 아닌 관료 출신에게 맡기기로 합의한 것이다.
28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매체 알게민 다그블라드 등에 따르면, 극우 성향 자유당(PVV)이 주도하는 연정 구성 정당들은 법무안전부 고위 공무원인 딕 스호프(67)를 차기 총리 후보로 선출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매체는 "스호프는 일반 대중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공무원"이라면서 "이날 발표는 스호프 본인을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완전히 놀라운 일"이라고 평했다.
'공무원 총리' 선출은 정치적으로 분열된 연정 파트너들의 고육책이었다. 2017년 창당한 신생정당 PVV는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하원 150석 중 37석을 확보해 제1당으로 올라서며 기성 정당의 반발을 불렀다. PVV를 이끄는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가 이슬람을 "정신 지체 문화"라고 비난할 정도로 극단적 우익 인사였던 탓이다. 이에 PVV는 최근 5개월간 연정 구성에 실패했다.
연정 주도권을 잃을까 봐 걱정했던 빌더르스 대표는 결국 지난 3월 스스로 총리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통상 제1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 네덜란드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이후 빌더르스 대표는 총리 후보로 로날트 플라스터르크 전 내무장관을 지명했지만, 부패 혐의가 제기되며 철회했다. 이런 혼란 끝에 '누구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을' 스호프가 차기 총리 후보로 등장한 것이다. 빌더르스 대표는 이날 스호프를 가리켜 "초당파적이며 진실하고 호감이 가는 사람"이라고 칭했다.
다만 네덜란드 연정의 우경화 바람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4개 정당이 지난 15일 연정 구성을 논의하며 반(反)이민·반환경을 골자로 하는 합의문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당시 4개 정당은 정부가 망명 심사를 2년간 정지할 수 있는 '임시 망명 위기법' 도입을 포함한 강도 높은 이민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전기차 구매 보조금 중단 등의 내용도 담겼다. 특히 스호프가 이민국(IND), 대(對)테러·안보조정기구(NCTV), 종합정보보안국(AIVD) 수장을 역임한 만큼 반이민 정책 추진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서는 스호프가 결국 빌더르스 대표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겠냐는 추측도 나왔다. 이런 질문에 대해 스호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는 4개의 연정 정당 지도자들에 의해 임명받았다"면서 "총리는 나 한 명뿐이며, 네덜란드 국민 모두의 총리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새 정부 출범을 위해서는 추가 내각 구성 작업이 필요하며, 내달 26일쯤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