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연예인이 등장하는 예방 백신광고와 해당 제약업체의 활발한 마케팅 덕에 대상 포진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대상 포진은 독감이나 코로나19처럼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질환인데 다른 일반적 바이러스들과는 다르게 우리 몸 안에서 오랜 기간 잠복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 바이러스가 일으킨다.
대상 포진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명칭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영어 약자로 VZV)다. 말 그대로 ‘수두’라는 병과 ‘대상 포진’이라는 병이 모두 이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성인이 되어서 감염되기도 하지만 주로 어렸을 때 감염되면서 수두를 앓게 되는데 이때 증상이 없어지더라도 이 바이러스는 사라지는 게 아니고 해당 환자의 신경세포 속에 침투해서 긴 잠복에 들어간다. 그러다 그 사람의 면역 기능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아직은 잘 밝혀지지 않은 원인들로 인해 재활성화되어 잠복기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이때 자신이 잠복해 있던 세포가 신경세포들이므로 신경계에 영향을 주게 되며, 특히 매우 강한 통증을 유발하는 대상 포진이 발생하게 된다.
수두라는 피부 질환을 일으킨 이후 수십 년 동안 신경세포에 잠복해 있다가 다시 대상 포진이라는 심한 신경 통증 피해를 주는 일련의 과정이 자세하게 밝혀진다면 신규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고 과학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 세포 속에 잠복하고 있는 바이러스들 중에 레전드급은 아마도 HERV 들일 것이다. 인간 내성 (혹은 내재 또는 내인성) 레트로 바이러스(Human Endogenous Retro Virus) 라고 불리는 바이러스들은 인류와 동거한 시간이 겨우 수십 년 정도가 아니라 벌써 수백만 년이나 되기 때문이다.
HERV 는 그 옛날 사람 세포 속에 침입한 이후 아예 사람의 DNA 속에 자기 DNA를 끼워 넣음으로써 사람 세포가 자신의 DNA를 복제하고 세포 분열할 때마다 그리고 대를 이어갈 때마다 고대 바이러스의 DNA도 덩달아 복제되어 사람 유전체, 정확하게는 ‘유인원’ DNA 속에 계속 함께 존재해 온 것이다.
예전 글에서 살펴보았던, 박테리아의 일종이었던 미토콘드리아 조상 세균이 동식물 세포 속에 자리를 잡고서 수십억 년 동안 에너지 생산 기능을 담당하는 세포 소기관으로서 공생 관계를 유지해 온 것보단 짧은 세월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수백만 년 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지내오며 각종 HERV들의 DNA는 인간 DNA 의 약 8%에 해당하는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사람 DNA 에는 약 10만 개의 HERV 염기서열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안에 유전자 발현 조절 인자 결합 부위들을 총 30만 개 정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HERV 들은 쥐 죽은 듯 사람 DNA 속에 무임승차만 해 온 게 아니라 사람의 각종 생명 현상 특히 뇌-신경 및 정신 질환과 암과 같은 질병에 관여하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최근에도 조현병, 우울증, 양극성 장애와 관련성이 높은 HERV 들이 또다시 확인되며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FLiRT 라는 신종 변이 때문에 올 여름 코로나가 재유행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고, 조류독감이 돼지와 젖소를 통해 사람에게 감염되는 사례들을 고려하면, 현존하고 있는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올 수도 있는 바이러스에 대한 대비는 중요한 일임이 명확하지만, 우리 세포 그리고 DNA 내부에 잠복하고 있는 바이러스들, 즉 내부의 적들에 대한 대비와 연구도 역시 중요한 일임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