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낙서 배후, 경찰서 흡연 중 줄행랑... 호의를 탈주로 갚았다

입력
2024.05.2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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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수갑 안 채우고 외부 흡연 편의
교회에 숨어 있다가 2시간 만에 발견

구속 상태로 경찰 조사를 받던 경복궁 낙서 배후 '이 팀장'이 감시 소홀을 틈타 탈주했지만, 두 시간 만에 붙잡혔다. 조사 중간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다 달아난 건데, 경찰은 수갑을 채우지 않고 개방 공간에서 흡연을 허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28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경복궁 낙서를 사주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강모씨는 이날 오후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 1층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다. 강씨는 지난 25일 문화재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돼 경찰 조사를 받아왔다.

당시 경찰은 수사관 2명 감시 하에 흡연을 허용했는데, 강씨는 이 허점을 이용했다. 그는 담배를 피운 직후인 오후 1시50분 감시가 소홀한 때를 틈타, 사이버수사과 청사 울타리를 넘어 종로보건소 방향으로 도주했다.

경찰은 가용 인원을 총동원해 수색에 나섰다.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해 강씨의 도주경로를 확인했다. 경찰은 결국 도주 두 시간 만인 오후 3시40분 인근 교회 건물 2층 옷장에 숨어있던 강씨를 검거했다.

경찰이 경비가 삼엄한 지방경찰청에서 구속 피의자를 놓쳤다는 점에서, 조사 과정에서의 허술한 보안 등은 논란이 될 전망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형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 신분이라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에 따라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돼야 한다"면서도 "흡연이나 화장실 이용 시 양손 수갑이 부당하다면 한 손에 수갑을 채우고 반대편은 지지목 등에 채우는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찰청 범죄수사규칙에 따르면, 경찰관은 조사가 진행 중인 동안 수갑·포승 등을 해제해야 하지만 자살·자해·도주·폭행의 우려가 현저할 때는 예외로 한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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