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5개월 만에 '한중일 정상회의'가 복원됐지만 '북한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한국·일본의 입장과 더욱 멀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수년 사이 부쩍 강화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이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 변화를 불러왔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관리할 필요성이 전보다 커진 점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세 나라는 27일 발표된 '3국 정상 공동선언'에 넣을 '비핵화' 표현을 두고 치열한 협상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당초 공동선언 초안에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우리의 공통 목표"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반면 중국은 한미일 합동 훈련이 대북 압박을 키웠고, 이것이 한반도 긴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해당 문구를 강하게 반대했다.
협상은 정상회의 당일 오전까지 이어졌고 실제 발표된 공동선언에는 "우리는 △역내 평화·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는 문구가 반영됐다. '각각'의 의견이 달랐다는 뜻으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표현을 반대한 중국 측 입장이 반영된 셈이다. 이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2019년 3국 정상회담 공동성명보다 후퇴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요미우리에 "마치 북한을 포함해 4개국이 협상을 하고 있는 듯했다"고 협상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28일 "미중 갈등·한미일 3국 협력 심화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중국 측 태도 약화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윤석열 정부 들어 한미일 3국 간 군사 협력 수준이 급상승한 데 대해 비판적 입장을 드러내 왔다. 북한의 핵 위협을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한미일 3국 협력의 본질은 '중국 견제'라는 판단에서다. 한미일 협력 강화에 대한 중국의 '방어기제'가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비핵화 의제에 대한 미온적 태도로 나타났다는 뜻이다.
태도 변화는 이미 감지됐다. 중국 외교사령탑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에서 "누군가 한반도 문제를 핑계로 냉전 시대로 역주행하려 한다면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3각 협력 체제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문 교수는 "표면적으로나마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해 온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 자체가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태도 변화엔 '북중관계 관리' 의중도 작용했다. 중국은 대북 영향력을 대미 외교의 주요 지렛대로 삼아왔다. 반면 북한은 지난해 9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등 러시아와 밀착하고 있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예전만 못한 셈이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대미 외교력 유지 차원에서라도 중국은 북한의 심기를 살펴야 한다"며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 문구를 반대해야만 했던 이유"라고 짚었다.
한편 중국 관영 매체들은 28일 한중일 정상회의 복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차이나데일리는 "세 이웃 국가는 미국의 분열 시도로 손상된 3국 관계 회복을 위해 앞장서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은 일본,한국이 중국을 압박하기를 원하지만, 두 나라 지도자는 (미국의) 대결 구도 구축 시도가 정세를 더욱 불안정하게 할 뿐이란 점을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매체들은 한반도 비핵화 의제를 두고 한일과 중국 간 이견이 드러난 점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