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받았던 골든볼 트로피가 얼마 전 경매에 나왔다.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며 대회 최우수선수에 뽑혀 받은 트로피다. 이 대회에서 마라도나는 '신의 손'으로 불렸다. 그는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상대 팀 골키퍼와 공중 볼을 다투다 손으로 공을 쳐서 골을 넣었다. 많은 이들이 '핸드볼 골'을 목격했지만 이를 보지 못한 주심은 골로 인정했다. 마라도나는 경기 후 "그 손은 내 손이 아니다. 그것은 '신의 손'이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만약 지금처럼 비디오판독(VAR)이 있었다면 결과는 뻔하다. 골은 무효 처리되고 일부러 공을 손으로 건드린 마라도나는 퇴장을 당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르헨티나는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이라는 마라도나의 공백을 메우기 어려웠을 것이고, 월드컵 제패라는 화려한 피날레도 없었을 것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20세기 최고의 골'로 선정했던 마라도나의 잉글랜드전 60m 질주 드리블 골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골든볼 트로피는 게리 리네커(잉글랜드)나 칼 하인츠 루메니게(독일) 손에 들려 있었을 것이다.
VAR은 요즘 축구에선 익숙한 광경이 됐다. 월드컵 같은 국제 대회뿐만 아니라 각 나라 리그에서도 대부분 통용되고 있다. '신의 손'과 같은 비신사적인 행위를 적발해 내고 오심을 줄인다는 게 그 취지다. VAR이 도입되면서 이전 같으면 놓쳤을 상당수 오심이 바로잡히고 있다.
그렇다면 축구는 오심이 없는 완전무결한 공정 스포츠가 됐을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EPL을 보더라도 경기 판정의 정확도가 VAR 도입 전 82%에서 올 시즌 96%까지 높아졌지만 여전히 오심은 존재한다.
하지만 많은 오심을 찾아내고 있음에도 EPL에서는 최근 VAR 폐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심판의 오심이 아닌 VAR로 인한 오심이 자꾸만 발생해서다. 올 시즌 VAR을 실시하고도 잘못된 판정을 내리거나, 정작 VAR이 필요한 순간 적용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 토트넘전에서 리버풀의 루이스 디아스 득점이 VAR 끝에 오프사이드로 판정받았는데, 비디오 분석은 오프사이드가 아니었으나 소통 실수로 심판진에게 내용이 잘못 전달되면서 골이 취소됐다. 지난달 노팅엄전에서 에버턴 선수들은 페널티 구역 안에서 세 차례 반칙을 범했으나 VAR이 실시되지 않아 노팅엄은 페널티킥 기회를 얻지 못했다.
EPL은 다음 달 6일 VAR 폐지 찬반 투표를 한다. EPL 전체 20개 구단 중 14개 팀 이상이 찬성하면 VAR은 폐지된다. 일부 구단들은 VAR이 순기능보다 부작용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VAR 도입에도 오심이 계속 나오면서 심판에 대한 신뢰와 권위가 떨어지고, 긴 판독 시간으로 경기 흐름이 끊겨 재미가 반감된다는 것이다. 오심을 100% 막을 수 없다면 축구 본연의 재미라도 찾자는 논리다.
K리그도 VAR 오심 논란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어 '재미'와 '공정'이라는 스포츠 본연의 가치를 놓고 벌이는 EPL의 찬반 투표 결과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인간의 판단에 기계의 정밀함을 더해 공정성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이 VAR 도입의 궁극적 목표다. EPL이 어떤 선택을 하든 세계 최고 인기 스포츠라는 이름값을 유지하기 위한 축구계의 적극적인 개선 노력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