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감시권 밖에서 이란 핵무장이 착착 진행되는 분위기인데도 서방은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어떻게 대응할지를 두고 미국과 유럽 간에 엇박자까지 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 본부가 있는 유엔 산하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7일(현지시간) 보고서를 통해 지난 11일 기준 이란의 60% 고농축 우라늄 비축량이 142.1㎏으로, 3개월 전보다 20.6㎏ 증가한 역대 최대치라고 밝혔다. 60% 농축 우라늄은 추가 농축 과정을 거칠 경우 2주 안에 핵폭탄 제조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이란은 자국 핵 프로그램이 순수 민간용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확보한 고농축 우라늄을 갖고 이란이 최소 3개의 핵탄두를 제조할 수 있을 것으로 IAEA는 보고 있다. 게다가 이란은 IAEA의 사찰 요구에 응하지도 않고 있다. 주요 핵시설에 설치됐던 감시 카메라들은 2022년 제거됐다. “IAEA의 요청에 불응하면 핵 프로그램이 평화적 목적이라는 이란의 선언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서방은 자중지란에 빠진 형국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영국과 프랑스는 강경 대응 방침을 세웠다. 내달 IAEA 이사회에서 이란의 핵 프로그램 진전을 비난하는 결의를 추진한다는 게 양국의 계획이다. 이란의 일탈을 계속 묵과할 경우 국제 핵 비확산을 감시하는 IAEA의 권위가 훼손되고 서방이 이란에 가해 온 압박의 신뢰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게 이들 걱정이다. IAEA 이사회의 비난 결의안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논의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반면 비난 결의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미국 인식이다. 유엔 안보리가 이란 핵 문제를 다루더라도 서방과 대립해 온 러시아와 중국이 이란을 제재하려는 모든 시도에 거부권을 행사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오히려 IAEA의 압박이 이란을 불필요하게 자극해 핵 프로그램을 더 확대하도록 만들었던 선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게 미국 측 우려라고 WSJ는 소개했다.
미국의 대안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 관련 비협조 현황을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해 제재 명분으로 삼는 방안이다. 이란은 2015년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독일·유럽연합(EU)과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체결했는데, 이란이 핵무기 개발 노력을 중단하는 대가로 서방이 대(對)이란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는 게 뼈대다. 미국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합의를 폐기했다.
문제는 11월 대선 뒤에나 이 방안을 실행에 옮긴다는 미국의 구상이다. 어떻게든 대선 전에 이란과의 긴장 고조를 피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을지 모른다는 게 유럽 측 의심이라고 WSJ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