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거부권, 野 다수결 맹신 버려야"... 극단적 여소야대 상생 해법[22대 국회 개원]

입력
2024.05.30 04:30
[국회의장 지낸 원로와 정치학자 5명 인터뷰]
"대통령부터 특검 수용하며 협치 물꼬 터야"
민주, 협치 행정부에 요구 앞서 국회서 먼저
"여야 모두 '제도적 자제' 필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은 정치가 실종되고 법 기술이 장악한 대립의 시간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의석수를 앞세워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면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시행령으로 법의 효력을 무력화하며 맞불을 놓았다.

의석 분포를 보면 22대 국회는 상황이 더 어렵다. 여당 108석, 범야권 192석인 극단적 여소야대 구도는 정치를 '비토크라시'(상대 정파의 정책을 전부 거부하는 파당정치)로 몰고 갈 공산이 크다.

하지만 과거 여소야대 국회가 늘 실패했던 건 아니다. 22대 국회 개원을 맞아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한 전직 국회의장(3명)과 정치학자(2명)는 29일 "의지만 있다면 상생의 길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통령부터 특검 수용하며 협치 물꼬 터야"

윤 대통령이 "협치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주문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2006~2008년·17대 후반기 국회)은 "상황이 어려워 보이지만 대통령이 의지만 있다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임 전 의장은 "지금은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 하나로 정치를 풀어가려고 하는데, 그런 방식을 이어가서는 협치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채 상병·김건희 여사 특검에 대한 대승적 수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 전 의장은 "윤 대통령이 정말 억울하다면 나중에 법원에 가서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이라며 "역대 대통령들도 받고 싶지 않은 특검을 수용하면서 정치적 돌파구를 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는 억울하니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제왕적 태도이자 4·10 총선으로 나타난 민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형오 전 의장(2008~2010년·18대 전반기 국회)은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조언했다. 김 전 의장은 이를 위해 "대통령이 각 당대표보다도 먼저 국회의장단, 국회 상임위원장단과 수시로 만나서 대화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민주당, 행정부에 협치 요구하기 전에 국회 내 협치부터

22대 국회의 키는 압도적 의석을 점한 더불어민주당에 달렸다. 이에 김형오 전 의장은 민주당이 먼저 실천하는 국회에서의 협치를 당부했다. 그는 "민주당은 '협치를 하자'면서 대통령을 향해 (민생회복지원금 같은) 행정권의 일부를 내놓으라는 주장을 하는데, 세계 모든 나라에서 행정은 독자적으로 행정부가 집행한다"면서 "진정한 협치는 국회 안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치를 위해 다수결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고, 치열하게 타협하고 의논해서 최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김 전 의장은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는 양당이 받은 지역구 득표 비율인 45.1%(국민의힘) 대 50.5%(민주당)였다"면서 "법안 등에도 여당의 의사가 45% 정도는 반영돼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문희상 전 의장(2018~2020년·20대 후반기 국회)은 노태우 정부 시절 야당 대표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사례를 언급했다. 문 전 의장은 "김 전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늘 '의회주의를 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국회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난다'고 말했다"며 장외 투쟁보다 국회 내 협치 추구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당정 원팀'만 강조하는 국민의힘을 향해서도 문 전 의장은 쓴소리를 했다. 그는 “헌법에 규정된 의회의 사명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행정부에 대한 견제에 있다"면서 "여당이 국정 의제를 선점하려는 경쟁 대신 야당 탓, 언론 탓 등 남탓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반복해선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야 모두 '제도적 자제' 필요"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과 여야의 '제도적 자제'를 촉구했다. 다수결이나 거부권 행사 등은 헌법이나 법에 명시된 권한이지만, 그런 강제적 수단 사용은 최소한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법적인 권한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다 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정치력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회에서 의석수로 밀어붙이는 것이 항상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조 교수는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강행 처리했지만 사실상 미완에 그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검찰청법 등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을 사례로 꼽았다.

4·10 총선에서 여야가 공통적으로 내건 공약을 중심으로 합의가 쉬운 의제부터 머리를 맞대라는 조언도 나왔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견이 큰 이슈부터 드라이브를 걸면 국회는 공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며 "대립이 있는 이슈보다는 서로 합의가 쉬운 공통 공약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성택 기자
나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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