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27일 서울에서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를 갖고 3국 협력을 제도화하자는 내용의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2019년 12월 중국 청두 회의 이후 코로나19 등 여파로 열리지 못했던 3국 정상회의가 한국의 주도로 재개된 건 의미가 적잖다. 3국은 공동선언에서 2030년까지 3국 간 인적 교류 4,000만 명 달성도 목표로 세웠다. 3국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고, 지식재산과 미래 팬데믹 대응 공동성명을 채택한 것도 주목된다.
그러나 3국 정상회의 공동선언은 북핵과 관련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안정·번영이 공동이익이자 공동책임이라는 걸 재확인했다’는 문구에 머물렀다. 당초 담길 것으로 알려졌던 ‘한반도 비핵화’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는 문구로 갈음됐다. 합의가 안 돼 각국이 자기 주장만 했다는 뜻이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 노력’을 명시한 2015년 제6차 회의 공동선언이나 2019년 제8차 회의 공동언론발표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3국 간 온도차는 공동기자회견에서도 확인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북한이 위성 발사를 예고한 것과 관련해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한 모든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도 위성 발사 중지를 요구했다. 반면 리 총리는 “관련 측은 자제를 유지하고 사태가 더 악화하고 복잡해지는 걸 막아야 한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북한을 감싸고돈 것이다.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는 미중 충돌 속 한반도를 둘러싼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한중일 정상이 만나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는 점에서 성사 그 자체만으로도 평가할 만하다. 한중일 최고위 협력체를 복원한 건 우리 외교의 지평과 운신의 폭도 넓혔다. 그러나 그동안 북한과 한반도 평화를 바라보는 한중의 시각 차가 더 커졌고, 그 차이를 줄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사실도 확인시켜 줬다. 한국 외교에 가능성과 숙제가 동시에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