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가 28일 마지막 본회의를 열었지만 2007년 이후 17년 만의 국민연금 모수(母數)개혁은 결국 목전에서 무산됐다. 더불어민주당이 막판에 내민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44%' 조합을 거부한 정부·여당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구조개혁 병행을 주장했지만 정작 이렇다 할 개혁안조차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야권과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모처럼 찾아온 연금개혁 기회를 놓쳤다는 한숨과 정부·여당에 대한 성토가 빗발쳤다. 소득대체율(올해 42%, 2028년 40%)에 대한 여야 합의가 어려웠다고 해도, 1998년 9%로 올린 이후 무려 26년간 고정돼 기금 고갈 위기를 부른 보험료율 인상마저 물거품이 돼서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구조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해 22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약 2년간 연금개혁을 추진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2일 기자 간담회에서 "22대 국회에서 더 토론하고 논의해 합의안을 만드는 게 낫지 않나 싶다"며 대통령실과 여당 입장에 동조했다.
마지막까지 구조개혁 필요성을 강조했으면서도 정부·여당은 그간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같은 국민연금의 핵심 숫자를 조정하는 게 모수개혁이고, 구조개혁은 국민연금 자체는 물론 기초연금, 공무원·군인연금과의 관계 재설정이나 통합 등 공적연금 제도 전체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연금법에 따라 지난해 10월 말 수립한 '제5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은 모수개혁의 핵심 숫자를 공란으로 남겼다고 비판을 받았는데, 구조개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동안정화장치(경제 상황에 따라 모수 자동 조절) 도입 △확정기여방식(수급 개시 시점에 연금액 결정) 전환에 대한 국민 의견 수렴 △구조개혁 논의(국회 연금특위)와 연계한 모수개혁 추진 등을 언급한 정도다. 정부는 구조개혁을 국회로 넘겼고, 여당은 구조개혁을 강조하면서도 내놓은 개혁안은 없었던 셈이다. 구조개혁을 어떻게 할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참여연대,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306개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연금행동)은 성명 등을 통해 누차 이 부분을 지적했다. 연금행동은 "연금특위 공론화에는 기초연금과의 관계, 퇴직연금제도 개편, 세대 간 형평성 제고 방안 등 구조개혁 의제가 포함됐고 시민대표단이 각각 의제에 대한 결정도 내렸다"며 "방안도 없으면서 구조개혁 운운하는 것은 기만이자 개혁을 방해하는 반(反)개혁 행태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제안한 신(新)연금과 구(舊)연금 분리 방안에 대해서도 정부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젊은 세대가 가입할 신연금은 낸 만큼 받을 수 있게 완전적립식으로 가고 구연금은 재정을 투입해 유지하자는 것인데, 정부 관계자는 "적정 수준 보험료 인상 등 논의할 사항이 많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여당 일각에서까지 "모수개혁으로 첫발을 내딛고 구조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결국 가장 시급한 보험료율 인상은 차기 국회의 몫으로 넘어갔다. 모수개혁에 대한 여야 합의가 다시 이뤄져야 하는데, 보험료율과 달리 소득대체율 조정은 또 한 번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전망이다. 연금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공론화에서 시민대표단이 선택한 50%를 주장하는 반면,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현재의 40%를 유지해야 한다는 반론도 강하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연금연구회 세미나에서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연금개혁을 명분으로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는 것은 개혁이 아닌 개악"이라며 "소득대체율 44%, 보험료율 13% 조합은 미래 세대에 더 많은 부담을 준다"고 강조했다. 소득대체율이 44%라면 보험료율이 21.8%가 돼야 수지 균형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전영준 한양대 교수도 "보험료율을 13%로 높여도 소득대체율이 44%라면 국민연금의 암묵적 부채(연금충당 부채)는 거의 변하지 않아 미래 세대의 순조세 부담 수준은 현행 제도보다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재정 안정화와 취약계층 소득보장 등을 강화하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