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속에 영원한 의미를 포착하는 사진 특종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사진기자의 근성과 노력, 당시 상황의 역사성과 사회적 중요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 나의 조국' 혹은 '최루탄을 쏘지 마라'로 불리는 사진의 한국일보 특종은 품성 있는 기자의 제대로 훈련받은 스킬이 녹아든 걸작이다.
이 사진은 1987년 6월 26일 부산시 문현 로터리에서 진행된 평화대행진에 집결한 시민, 학생 시위대를 사진 취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경찰이 다탄두 최루탄을 발사하며 가두시위를 저지하자 한 시민이 윗옷을 벗고 “최루탄을 쏘지 마라”며 경찰 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이다.
비록 엄중한 시국 상황으로 인해 당시에는 1면에 게재되지 못했지만, 민주화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 사진은 1999년 9월 28일 AP통신 ‘20세기 100대 사진’으로 선정됐다. AP통신 전 세계 고객사 및 미국 내 회원사가 각각 50장씩 고른 것에 포함됐다.
수상 이후 이어진 다수의 인터뷰에서 특종 사진을 찍은 고명진 기자는 “셔터를 누르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내 평생의 특종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진기자구나, 내가 사진기자구나. 사진기자로서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다만 이 사진을 당시 신문에 싣지 못했다. 서글펐다. 자극적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사진에 대한 애정이 더욱 큰 것 같다. 내가 사진기자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보람과 긍지를 느끼게 만들어 준 사진이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과격한 진압이 난무하던 1987년 6·10 민주항쟁을 온몸으로 담아낸 당시 사진기자들의 직업의식을 반영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 사진을 찍기 하루 전인 6월 25일 고 기자는 대구시위에서 ‘백골단’으로 불리던 진압경찰에게 뭇매를 맞았다. 시위현장에서 체포된 시민을 연행하는 일명 ‘닭장차’까지 쫓아가며 사진을 찍는 적극적인 취재에 화가 난 경찰의 보복이었다. 100대 사진 선정 뒤 이뤄진 한 인터뷰에서도 고 기자는 “당시에는 사진촬영을 방해하는 전담 백골단이 있었고 사진기자에게 매타작을 가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대구에서 짓밟힌 몸을 이끌고 부산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엄혹했던 시절의 외압과 자기검열로 빛을 보지 못했던 고 기자의 사진들은 이후 '그날, 그거리'라는 책으로 묶였고 그 책의 표지는 ‘아! 나의 조국’이 장식했다.
※연재 일정상 70개 특종 가운데 50개를 선별 게재하기 때문에, 일부(예: <21>합의개헌 좌초 간주, 4·13 호헌조치 예고·1986) 특종은 소개되지 않습니다. 독자님들의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