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지방이 제 위치 아닌 곳에 쌓인다면…

입력
2024.05.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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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헌 교수의 건강 제안]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체지방은 잉여 에너지를 저장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주요 장기를 보호하고, 공복감과 포만감을 조절한다. 또한 인슐린 감수성을 유지하고 체온을 유지하며 포도당과 콜레스테롤을 조절한다. 또한 외부의 화학적 신호나 신경 자극에 반응하고 신호를 내보내면서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정교하게 조정한다.

키와 체중으로 산출한 비만도가 같더라도 합병 질환 유무와 건강 위험도가 개인마다 차이가 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체지방이 분포하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이·성별·인종·유전·체중 증가에 대한 반응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지방이 축적되는 위치나 양상이 달라진다.

체지방은 피부 바로 아래에 피하지방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얼굴·팔·다리·엉덩이 부위에 축적된다. 하지만 지방세포가 제 위치인 피하층에 있지 않고 엉뚱한 장소에 축적되면 기능 이상이 나타나 건강에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이처럼 체지방이 피하지방이 아닌 다른 장기나 조직에 축적되는 것을 ‘이소성 지방’이라고 한다.

2017년 국제동맥경화학회와 국제심혈관대사연구그룹에서는 복부 비만과 이소성 지방이 2형 당뇨병·동맥경화·심혈관 질환 발병 위험 요인이라고 밝혔다.

내장 지방 증가는 섭취 열량이 소비 열량보다 지속적으로 많은 상태에서 피하지방이 더 이상 증식하지 못하면서 나타나는 병적 반응이다. 복부 비만이 과도하게 쌓이면 내장 지방과 이소성 지방 축적이 증가하고, 지방세포 기능 장애, 염증과 아디포카인(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물질) 조절 장애 그리고 인슐린 저항성이 초래된다.

내장 지방이 심혈관계 합병증·대사 합병증 등 여러 가지 건강 문제를 초래하는 메커니즘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3가지 원인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 내장 지방과 피하지방은 대사 특성이 뚜렷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장 지방은 대부분 간문맥으로 배출되므로 간이 고농도의 유리 지방산과 글리세롤에 노출되어 간 대사에 여러 가지 장애가 초래된다.

이 때문에 간에서 인슐린 제거율이 줄어 고인슐린혈증이 악화하고, 중성지방이 풍부한 지단백과 포도당 합성이 늘어나 인슐린 저항성과 2형 당뇨병으로 이어지게 된다.

둘째, 과도한 내장 지방이 염증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내장 지방이 퍼지면 비대해진 지방세포에 대식세포가 침투해 염증성 사이토카인 생산이 늘어나고 아디포카인 생산이 줄어든다. 동맥경화, 당뇨병 그리고 염증을 예방하는 단백질인 아디포카인은 피하지방과 내장 지방 모두에서 분비되지만 내장 지방이 과다하게 증가하면 온몸에서 아디포카인 생산이 줄어든다.

셋째, 내장 지방은 이소성 지방 증가 지표이기 때문이다. 섭취 열량이 과다하거나 신체 활동량이 줄어 중성지방이 과도하게 존재하는데 피하지방이 증식해 잉여 에너지를 저장하지 못하면 평소 지방이 축적되지 않는 간·심장·근육 등에 체지방이 쌓이게 된다.

다행히 나이·성별·인종과 관계없이 식사 조절이나 운동으로 섭취 열량보다 소비 열량이 많으면 내장 지방과 피하지방이 줄어들게 된다. 또한 꾸준히 운동하면 체중이 줄지 않더라도 내장 지방이 줄어들 수 있다.

이소성 지방은 건강의 경고 신호이므로 복부 비만이 있거나 이소성 지방이 발견된다면 식사 조절과 운동으로 섭취 열량보다 소비 열량을 늘려 체중을 줄여야 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