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더 선명해야… 한국일보만의 칼럼 강화를"

입력
2024.06.1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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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면 평가

한국일보 뉴스이용자위원회는 7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회의를 갖고 오피니언면을 평가했다. 한국일보의 시각과 다양한 의견을 보여주는 사설과 칼럼이 평가 대상이었다. 회의에는 최영재 위원장을 비롯한 외부 위원 8명과 사내위원인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이 참석했고, 이진희 논설위원과 강주형 오피니언에디터가 함께했다.

"균형적이지만 선명성 떨어지는 사설"

한국일보 사설은 치우지지 않는 균형이 긍정적이나 선명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장한익 위원은 "다른 신문사 사설에 비하면 한국일보의 중립적 사설이 순한 맛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정치권의 극단적 자기주장에 피로감을 느끼는 중도층을 염두에 둔다면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명하지 못한 제목과 내용으로, 주장하는 바가 불투명하게 느껴지고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조영준 위원은 "균형을 최우선시하면 언론 본연의 감시·견제·비판 기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면서 "한국일보 사설의 제목과 내용은 선명성이나 비판적 의식이 약해 논조가 모호하게 느껴지고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수 신문조차 ‘검사 위에 여사 나라’(동아일보) ‘임시 대통령’(조선일보) 같은 표현을 쓰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한다"며 "한국일보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신문의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경미 위원도 사설에 해법과 대안이 빠져 모호하거나 무책임해 보이는 문제를 짚었다. 5월 한 달간 연금개혁 관련 사설 4편, 칼럼 3편이 실렸는데 분명한 입장이 있는 글은 세대 간 비용 분담을 해야 한다는 칼럼 한 편이었고 나머지는 '잘 개혁하라'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 그는 "중앙일보의 사설·칼럼은 연금개혁에 대한 입장이 분명하다. 구체적으로 쉽게 '더 내고 덜 받는 게 낫다'고 제시한다. 이와 비교해 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네이버 라인야후 경영권 제한에 대한 사설 '일본의 ‘라인 경영권’ 뺏기 노골화··· 정부는 눈치만 보나'(5월 10일 자)에서도 "우리 정부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까지만 다루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독자가 있을까. 언론이라면 한발 더 나아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과거 역사에서 어떤 사례가 있었는지 등을 제시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의대정원 증원 이슈에 대한 사설이 정부에 관대하고 의사들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 '고용상 성차별 사건, 대부분 남성 위원이 판단해서야'(5월 20일 자)는 묻혀있는 의제를 제기해 인상적이었다는 의견이었다. 이 논설위원은 "논설위원실은 일단 나온 정책, 결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선명성이 떨어지는 것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여성·소수자 필진 중용해 다양성 넓히길"

필진과 오피니언면 콘텐츠의 다양성이 주요한 논의 주제였다. 박수진 최원석 위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오피니언면의 외부 필진 여성 비율은 27.8%, 내부 필진 여성 비율은 32.6%였다. 여성 비율이 아주 낮은 것은 아니었으나 연성 코너에 집중돼 있고, 필자 다양성 부족이 콘텐츠 다양성 제한으로 이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박수진 위원은 "여성 필자는 문화와 일상, 생명을 주제로 한 연성 칼럼에 집중돼 있고 시사 현안 논평이나 정치·외교 등 주제를 다루는 칼럼 필자는 대부분 남성이다. 또 여성 필자의 직업은 다수가 교수이고, 정치인·공무원은 한 명도 없으며, 사업가는 있지만 경제단체 분야는 없다"며 "여성 필자는 사적·비공식적 분야에 적합하다는 편견의 결과가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3월 김레아 오피스텔 살인, 5월 의대생 강남역 살인, 며칠 전 강남 오피스텔 모녀 살인 등 교제 살인 사건들이 최근 많았는데, 외부 칼럼에서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 위원 또한 "최근 BBC의 버닝썬 사건 다큐와 '서울대 n번방' 사건이 화제가 됐는데 둘 다 디지털 성범죄로 연계된 문제라는 시각을 한국일보에서는 볼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박수진 위원은 "오피니언면의 여성 과소 대표는 남성 중심 시각의 공론장 형성과 성차별 구조를 강화할 우려가 있다"며 "한국일보가 '세상을 보는 균형'을 강조하는 만큼 언론의 기능을 잘할 수 있도록 내·외부적으로 여성 필진을 적극 육성·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만 아니라 2030세대, 워킹맘, 외국인 노동자 등 다양한 목소리를 담으라는 주문이 이어졌다. 조 위원은 "제 아내도 셋째를 낳으며 일을 접었는데, 저출생이 심각한 상황에서 워킹맘과 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박찬희 위원은 기술 발전이 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오히려 약화시킬 위험성을 지적한 '소수자 공감은 AI에 외주할 수 없다(5월 30일 자)'를 언급하며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다양한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할 필진이 더 많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 오피니언에디터는 "다음 필자 개편에 성비 균형 등 뉴스이용자위원회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기자 칼럼을 늘려달라는 요구도 상당했다. 외부 필자보다 기자의 논조가 더 비판적이고 분명하며, 기사에서 볼 수 없는 취재 뒷이야기나 시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박찬희 위원은 "저연차 기자들의 취재후기를 담은 '기자의 눈'이 타사에선 하루 이틀 간격으로 실리는데 한국일보에선 한 달에 한두 번"이라며 활성화를 요청했다.

"너무 많은 코너... 차별화 브랜딩 필요"

오피니언면의 전반적 구성에 대해선 칼럼과 코너가 너무 많고 구분이 안 된다는 평이었다. 내부 필자가 쓰는 사설과 기명칼럼 외에 '메아리' '지평선'(이상 논설위원 중심) '뉴스룸에서'(부장 칼럼) '36.5℃'(기자 칼럼) '기억할 오늘' 등이 있고 외부 필자들은 기명칼럼과 '한국의 창' '아침을 열며'(이상 시평) '오늘, 세계'(국제) '삶과 문화'(일상) '인문 산책'(인문학) '생명과 공존'(생태) '2030의 정치학' '2030세상보기'(청년) 외 다양한 전문가 칼럼을 연재 중이다. 장민제 위원은 "'아침을 열며' '삶과 문화' 등은 칼럼의 이름이 다소 추상적이고 매번 다른 주제를 다뤄 하나의 코너로 묶이는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다"며 코너의 차별화와 브랜딩을 주문했다.

그는 '어도락가의 말구경'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노경아의 달곰한 우리말'을 전문가의 식견이 담겨있고 브랜딩이 잘 된 예로 들었다. 또 '김희원 칼럼'이 "여야를 가리지 않는 비판으로 폭넓은 공감을 끌어내는 한국일보의 오리지널 칼럼으로 자리 잡았다"(장민제 위원), '36.5℃'가 "기자들의 온기가 느껴져 독자가 편안한 시각으로 읽을 수 있다", '쓰레기 박사의 쓰레기 이야기'는 "다양하게 성찰하게 해준다"(이상 장한익 위원), '2030의 정치학'이 "중년 이상이 주도하는 언론에서 꼭 필요한 코너로, 딱히 답이 없어도 문제 제기가 신선하다"(박경미 위원)는 평을 받았다.

눈에 띄는 칼럼으로 고찬유 경제부장의 '사과도, 농부도 죄가 없다'(3월 13일 자) '민생지원금 25만 원? 250만 원은 안 되나'(5월 13일 자)는 "풍부한 취재 경험과 예리한 시선이 담긴 좋은 칼럼으로 과거 칼럼까지 모두 찾아 읽게 만들었다"(장민제 위원)는 칭찬을 받았다. 남보라 기자의 '아무도 그의 수능 점수를 묻지 않았다'(5월 14일 자)는 "피해자보다 가해자 신상에 주목한 언론 행태, 가해자 서사가 감형 요소가 되는 현실을 비판해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조 위원)고 평가됐다.

최 위원장은 임팩트 있는 외부 칼럼을 꼽았다. 이상돈 전 국회의원의 '민정수석과 사법방해'(5월 27일 자)는 "미국에서 대통령 개인 문제에 백악관 참모가 간여해선 안 된다는 선례가 확립된 배경을 다룬 수작"이었고, '한국인에 대한 오해-①가족보다 돈을 우선한다'(정한울의 한국사람탐구·6월 6일 자)는 "한국 사람은 단수응답이 많아 빚어진 오해임을 분석해 외국 기관의 조사결과에 대한 비판적 해석의 필요성을 보여줬다"는 평이다. '밥 말리의 출애굽기'(인문 산책·4월 29일 자)도 호평받았다.


"칼럼 품질 관리 필요... 잘 읽히게 써야"

뉴스이용자위원들은 개선해야 할 여러 가지 문제를 추가로 짚었다. 우선 지면에선 전혀 볼 수 없었던 이슈가 사설에 등장해 독자로선 당혹스럽다는 지적이다. 박찬희 위원은 "사설 '”여아 조기입학으로 교제 늘리자”, 이게 국책기관 저출생 대책'(6월 4일 자)은 관련 보도가 6월 2일 온라인에만 실렸고, 사설 '나흘 늦춰진 치킨값 인상… 정부 물가관리 민낯이다'(6월 1일 자)도 관련 기사가 온라인에만 있거나 한 달 전에 지면 보도가 있었다"며 기사와 사설의 조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칼럼의 품질이 들쭉날쭉해 팩트 체크와 품질 관리에 신경 써 달라는 당부도 나왔다. 일부 칼럼에서 전산투표와 개표 전산화를 혼동한 것으로 보이는 주장이 포함('개표를 더 전산화할 수는 없을까'·4월 17일 자)돼 있다거나, 제목('왕건과 민족 재통일'·6월 3일 자)과 달리 내용에서 현재 시점에서 왕건의 민족 통일이 어떤 시사점이 있는지 전혀 드러나지 않아 편집이 필요해 보인다는 지적이다.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한다는,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박경미 위원은 타사의 칼럼을 읽어보면 주장이 더 선명하고 쉽다고 말했고, 최 위원장은 "기사든 칼럼이든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필자 소개가 친절하면 좋겠다(최 위원), 공론을 주도하는 오피니언의 중요도를 생각해 섹션을 시각적으로 돋보이게 편집할 필요가 있다(조 위원)는 제언이 이어졌다.


한국일보에서만 볼 수 있는, 전문적, 독창적인

오피니언면은 신문사마다 설정한 방향성이 있지만 "결국 차별성이 관건"이라는 게 최 위원장의 조언이다. 전문적 지식, 독창적 관점, 읽기 쉬운 글쓰기를 통한 차별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최 위원장은 "오피니언면은 균형과 다양성을 갖추고 있지만 그 자체가 차별성을 보장하진 않는다. 한국일보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있어야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즉 얼마나 읽히느냐, 내용이 보편적이냐 차별적이냐의 기준으로 콘텐츠 전략을 고려할 때, 많이 읽히면서 한국일보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적극 개발하고 확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적게 읽히더라도 한국일보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라면 이 또한 있어야 한다. "많이 읽히는지 여부는 한국일보가 판단하겠지만 뉴스이용자위원들이 좋은 칼럼으로 손꼽은 것들이 한국일보만의 차별적인 콘텐츠일 것"이라며 특색 없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콘텐츠보다 이를 앞세우라고 말했다.

한국일보가 더 관심가져야 할 분야로 최 위원은 최신 산업 분야, 즉 AI를 비롯해 유통에선 직구 이슈, 확장 중인 OTT·웹툰, RE100을 포함한 기후정책 분야 필진 발굴이 필요하다고 봤다. 장민제 위원은 '김도훈의 엑스레이'처럼 재치 있는 칼럼을 기대한다고 제안했다.


취재 충실한 '산모가 또 죽었다' 기획


이 밖에 '산모가 또 죽었다'(5월 7~13일 자) 기획이 지난달 좋은 기사로 꼽혔다. 저출생 시대에 줄어드는 산과 의료진과 무너진 임신·분만 시스템으로 산모가 사망하는 현실을 잘 보여줬다는 평가다. 장한익 위원은 "딸이 아이를 낳는다고 하면 그러라고 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들 만큼 충격적이었다"고 했고 박찬희 위원은 "모성사망 유족 13명, 산과 의료진 55명을 취재한 점, h알파 영상 '고위험 산모의 아이가 태어나는 데 필요한 것''고위험 임신 자가진단' 인터랙티브로 관심도와 몰입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오동운 공수처장 검증 기사에 대해서도 칭찬과 함께 앞으로 공직자 검증에 꾸준히 노력해 달라는 당부가 있었다.


송은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