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당심이고, 당심이 민심이다.”
2022년 12월 ‘친윤’ 핵심으로 꼽히던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한 말이다. 장 의원은 이듬해 3월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김기현 의원을 당대표로 밀었는데 그를 “당심과 윤심, 자유 우파 민심을 같이 받는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대통령의 의중이 당의 뜻이고, 그게 곧 민심이라는 말은 절대왕정 시대의 사고방식이란 비판이 나왔지만 ‘김장 연대’로 표현된 둘의 협력은 ‘윤심’의 지원을 받으며 위력을 떨쳤다.
당대표 선거는 “당을 정비해 일사불란하게 한목소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는 장 의원 말대로 흘러갔다. 대통령실은 당권 레이스에서 김기현 후보 경쟁자로 떠오른 나경원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과 기후환경대사직에서 해임했다. “해임이 대통령의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나 전 의원에게 국민의힘 초선 의원 48명은 “대통령을 모욕했으니 사과하라”며 연판장을 돌렸다. ‘윤심 후보’가 아닌 나 전 의원은 당대표 선거에 나서지 말라는 뜻이었다.
결국 나 전 의원은 불출마했고, 억지스러운 교통정리 끝에 김 의원은 당대표가 됐다. 그의 약속은 ‘당 지지율 55%, 대통령 지지율 60% 달성’이었다. 그런데 ‘윤심’과 ‘일사불란한 원팀’을 강조한 결과는 참담했다. 당정의 지지율은 단 한 번도 목표한 숫자를 찍지 못했고, 국민의힘이 이후 선거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았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윤핵관’들의 ‘윤심=당심=민심’ 발언은 지난 총선에서 ‘집권 여당 사상 최악의 참패’를 초래한 결정적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 “당심이 곧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고, 명심이 곧 민심이다.”
최근 국회의장 경선 과정에서 나온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당선자 발언은 그래서 당혹스럽다. 자신이 당원과 당대표의 지지를 받는 국회의장 적임자라는 걸 강조하려는 말이었겠지만, ‘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곧 민심’이라는 건 듣기 민망한 발언이었다. 국민의힘 총선 참패 원인을 결코 모르지 않을, 6선 관록을 지닌 정치인의 발언이란 점을 고려하면 더욱 실망스럽다.
총선에서 175석으로 압승한 민주당의 요즘 분위기는 거침없고 오만했던 국민의힘 집권 1년 차와 닮았다. ‘명심’을 등에 업은 박찬대 의원이 경선 없이 원내대표로 추대되고, 국회의장 경선까지 인위적인 교통정리가 시도된 것도 국민의힘과 판박이다.
국회의장 경선에서 승리한 개혁 성향의 친명 정치인인 우원식 의원마저도 추미애 당선자를 꺾었다는 이유로 ‘수박(비이재명계 지칭)’이라 공격받는 분위기에선 누구도 선뜻 ‘명심’과 결이 다른 의견을 낼 수 없을 것이다. ‘당심=명심=민심’이라는 추 당선자 발언을 정작 이 대표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민심을 따르는 것이 최고 가치인 정치에서 거대 양당이 앞다퉈 권력자의 의중을 민심과 동등한 위치로 격상시키고 있으니, ‘일극체제’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오만하기 짝이 없는 행태인데, 강성 지지자들은 오히려 열광하는 게 현실이다. 이미 수많은 정치인이 정권·당권에 따라 ‘친○’임을 내세우고, ‘○심 팔이’로 연명하고 있다.
서경(書經)에 ‘민심무상(民心無常)’이란 말이 있다. ‘백성의 마음은 일정하지 않아 군주가 선정을 베풀면 사모하고 악정을 베풀면 앙심을 품는다’는 뜻이다. ‘권력(당권)자의 의중이 곧 민심’인 '친○ 정치'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정권은 길어야 5년이고, 어떤 정치를 하느냐에 따라 그 기간은 더 짧아질 수 있다. 권력교체기마다 발 빠르게 변신해 권력자의 의중만 살피는 ‘○심 팔이’ 정치인이 ‘뉴노멀’이 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