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자 김지은씨가 가해자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상대로 낸 민사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비위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충남도에도 일부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부장 최욱진)는 김씨가 안 전 지사와 충남도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24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청구 금액 3억 원 중 8,347만 원을 인용하면서, 이 중 약 5,300만 원은 안 전 지사와 충남도가 공동으로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관련 형사사건 등에 의하면 안 전 지사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등이 인정되고, 자신의 배우자가 (피해자와 관련한) 형사기록 등을 유출하고 비방글을 올리는 데 방조한 책임도 인정된다"며 "그의 불법행위에 직무집행 관련성이 있으므로 충남도의 책임도 있다"고 설명했다.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 출신인 김씨는 2020년 7월 "안 전 지사의 범행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까지 겪었다"며 3억 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충남도에 대해서도 "안 전 지사의 성범죄가 직무 수행 중 벌어진 만큼 국가배상법에 따라 공동 책임이 있다"며 피고에 추가했다.
안 전 지사 측은 앞선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됐는데도 재차 범행을 부인했고, 이 때문에 재판이 늘어졌다. 특히 "김씨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안 전 지사의 행위 간엔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고, 이에 재판부는 2021년 9월 피해사실 입증을 위한 김씨의 신체감정을 의뢰했다.
이후 결과 회신을 기다리기 위해 중단됐던 재판은 지난해 8월 재개됐다. 안 전 지사 측은 또 다시 '합의된 성관계'라는 주장을 반복했고, 충남도는 "안 전 지사의 개인적 불법행위"라며 선을 그었다. 결국 재판부가 "사건 특수성을 고려해 집중 심리하겠다"며 재판을 진행해 4년 만인 이날 선고했다.
선고 직후 피해자 측은 손해배상 책임이 받아들여진 데 안도하면서도 길어진 재판 진행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씨 측 법률대리인인 박원경 변호사는 "피해자는 PTSD로 이미 공무상 요양을 인정받았는데도 또 신체감정을 하니 당사자도 힘들어하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고 꼬집었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10차례에 걸쳐 출장지 등에서 김씨를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모두 무죄 판단을 내렸지만, 2심은 1건을 제외한 9건을 유죄로 뒤집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판결은 2019년 9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후 안 전 지사를 상대로 한 김씨의 폭로는 국내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1호 사건으로 꼽히면서 한국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을 일깨운 계기로 자리 잡았다. 논란 속에 2018년 3월 사임한 안 전 지사는 2022년 8월 만기 출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