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마저 위태위태… 의료개혁 필요 법안, 21대 국회서 좌초하나

입력
2024.05.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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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29일 폐원, 간호법 무산 위기
국립대병원 복지부 이관 법안 진척 없어
수도권 대형병원 분원 규제 법 통과 요원
환자단체는 의사 집단행동 제재 법 요구

21대 국회가 29일 폐원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의료공백 해소를 위해 필요한 보건의료 개혁 법안들이 좌초할 위기에 놓였다. 26일 기준 28일 마지막 본회의까지 고작 이틀밖에 안 남았는데 여야는 채 상병 특검법 등에 매몰된 상태다. 미처리 법안은 22대 국회가 개원하는 30일 폐기된다. 법 제정이 늦어지면 의료개혁도 그만큼 늦어진다.

당장 시급한 간호법조차 앞날이 불투명하다. 지난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도 대통령 거부권에 가로막혔던 간호법은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 집단행동 이후 의료공백을 메우고 있는 간호사들의 헌신과 역량이 재조명되면서 극적으로 부활했다. 간호사 업무 범위를 보건의료기관, 학교, 산업현장 등으로 구체화하는 등 재의 사유를 해소한 대안도 도출됐다. 의사 업무 일부를 담당하면서도 법으로 보호받지 못했던 진료지원(PA)간호사를 제도화하겠다는 정부 의지도 강했다.

이달 초 보건복지부는 유의동·최연숙 국민의힘 의원,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안 3개에 대한 수정안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야 간사단에 제출했다. 사회적 합의와 정치권 지지를 모두 확보한 만큼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여야 갈등 탓에 상임위가 열리지 않고 있다.

정부와 여야 모두 다음 국회에서도 간호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간호계는 의료공백 사태가 해결되면 간호법이 유야무야될 수 있다며 우려한다. 대한간호협회는 21대 국회에서 간호법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PA간호사 제도화 전 단계로 시행 중인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거부하겠다고 경고했다. 간호사들은 24일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열어 “법적 보호와 보상체계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간호사들은 온갖 업무를 도맡으며 막다른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법 제정을 촉구했다.

의료개혁을 뒷받침할 또 다른 핵심 법안들도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정부는 국립대병원을 지역의료·필수의료 중추로 육성하기 위해 소관 부처를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옮길 계획이다. 이미 교육부와 복지부가 협의를 끝냈고, 정부와 국립대 간 의견 조율도 마쳤다. 국회엔 강기윤·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국립대학병원 설치법 개정안과 서울대학교병원 설치법 개정안,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국립대병원 설립·육성·지원 법안 등이 올라와 있지만, 상임위에 회부된 이후 아무런 진척이 없다.

무분별한 수도권 대형병원 분원 설립을 규제해 지역 의료인력 유출을 막기 위한 의료법 개정안도 국회 통과가 요원하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종합병원 개설 시 100병상 이상은 시도의료기관개설위원회의 사전 심의·승인을, 300병상 이상은 복지부 장관 승인을 받도록 해 국가 차원에서 병상 수급 관리를 강화하는 데 목표를 뒀다. 대한의사협회와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찬성 의견을 냈으나 역시 상임위에서 멈춰 있다.

환자단체는 2020년 의사 파업을 계기로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 처리를 줄곧 요구해 왔다. 법안은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등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유지 의료행위를 의료법에 규정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이런 의료행위를 정지, 폐지 또는 방해할 수 없도록 제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조합법에선 공중의 생명, 건강, 안전과 직결된 업무는 쟁의 시에도 반드시 유지하도록 규정하는데, 쟁의 행위가 아닌 의사단체의 진료 거부에는 이를 적용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완하는 취지다.

이 법안이 진작에 통과됐다면 환자 생명을 볼모로 정부 정책을 번번이 좌절시키는 의사 집단행동을 규제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전공의들은 응급실과 중환자실까지 모조리 비운 채 업무개시명령도 무시하며 3개월 넘게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정부와 국회는 의료인 집단행동 시에도 필수의료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환자들이 피해와 불안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22대 국회가 풀어야 할 첫 번째 숙제”라고 강조했다.

김표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