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파괴자이자 국제보호종인 민물가마우지? 팩트체크 해보니 '사실 아냐'

입력
2024.05.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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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봄 햇살에 초록으로 물들었어야 할 나무가 새하얗게 죽어있다. 짙은 수면 위에 흰 금이 간 모습이 퍼지는 죽음을 형상화한 듯하다. 생명을 잃어가는 나무 사이사이 검은 점이 박혀 있다. 마찬가지로 흰색인 나뭇가지로 둥지를 틀고 앉아 새끼를 품는 민물가마우지다. 한때 연 1,000여 마리 남짓 보이던 겨울 철새가 어느새 텃새가 돼 수만 마리 넘게 세를 불리자 환경부는 지난해 민물가마우지를 유해야생동물(조수)로 지정하고 올해 3월부터 총기를 이용한 포획을 허용했다. 유해조수 목록에 새로운 종이 추가된 것은 ‘분변과 털로 문화재와 건물을 훼손’한 죄로 ‘집비둘기’가 추가된 2009년 이후 14년 만이다.

하얗게 죽은 나무가 주는 시각적 충격에 ‘머문 자리마다 초토화된다’는 언론 보도가 쏟아져 나오니 민물가마우지가 유해조수로 지정된 이유를 생태계 파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지정 이유는 ‘양식·낚시터·내수면어업 등 사업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물가마우지는 온갖 혐의를 받으며 미움받고 있는데, 관련 내용을 하나씩 살펴봤다.

분변 가득한 번식지, 보기에는 싫지만 생태계 영향은 미미


민물가마우지가 서식하는 나무가 하얀 것은 새의 분변에 의한 ‘백화 현상’이다. 한 장소에서 무리를 지어 번식하는 습성이 있어 나무 한 그루에도 여러 마리가 둥지를 튼다. 식사 후 꼬박꼬박 번식지로 돌아오고 올해 번식을 안전하게 끝내면 내년에도 다시 돌아오는 새다. 식사량도 엄청나 ‘많이 먹고 많이 싸는’ 새가 좁은 공간에 분변을 쏟아내니 나무가 버틸 재간이 없다. 대량의 분변이 나무의 광합성을 막고 토양에 질소(N)와 인(P)을 과다 축적시키며 균형을 깨뜨린다.

그런데 백화 현상의 원인이 되는 무리 짓는 습성 때문에 오히려 생태계 전반에 걸친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 고사한 수목은 지역의 전체 산림 면적에 비해 매우 좁은 면적에 한정되는 것이다. 최창용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는 “(민물가마우지가) 집단으로 번식하다 수목이 죽으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죽었던 수목에서 (자연의) 처리 과정이 발생한다”며 “숲의 장기적인 순환 과정에서 보면 그렇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오히려 이런 순환이 “수계 생태계에 있는 영양분을 산림으로 옮겨주는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토착 어종 말살은 아직 확인되지 않아, 외래종 퇴치에 기여하기도


민물가마우지가 미움받는 또 다른 이유는 어마어마한 먹성. 민물가마우지가 번성하고 토종 민물고기의 씨가 말랐다는 것이다. 이 혐의는 지역에 따라 맞을 수도, 오히려 틀릴 수도 있다. 경희대학교 연구진은 2021년 환경부의 용역을 받아 수행한 민물가마우지의 생태적 영향에 대한 연구에서 해외 연구 결과를 종합해 "개체수 증가와 어류 개체군과의 상관관계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고했다.

국내 민물가마우지의 먹이 비율에 대한 연구는 적지만 한국교원대학교에서 2017년 국내 최대 번식지 중 하나인 팔당호의 개체군 먹이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블루길(26.4%), 배스(20.4%), 강준치(17.1%), 누치(16.2%) 순으로 많이 섭취했다. 네 어종의 합은 전체 먹이 중량의 80.1%로 민물가마우지가 생태교란종(블루길·배스)과 식용으로 가치가 없는 어류 처리에 앞장서고 있었다.

다만 종과 크기를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민물가마우지 특성상 외래어종에 장악당하지 않은 수역은 토착 어종이 주 먹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보호가 필요한 어종 서식지에 가마우지가 과포화되면 개체수 관리가 필요할 수 있다.

어민 피해 있으나 정확한 통계 작성이 당면 과제


강원도 내수면 어민들을 중심으로 양식장과 그물 어업 등에 대한 피해가 다량 보고되며 민물가마우지의 유해조수 지정이 추진됐는데, 현재까지는 정확한 피해 집계가 어려운 상황이다. 내수면 어업장과 민물가마우지 번식지가 집중된 강원, 경기, 호남 중 도내 피해를 집계한 광역자치단체는 강원과 전북 뿐이고, 이마저도 어민들의 자발적인 신고와 추정치 기반으로 작성됐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전문적인 용역을 줘서 산출한 통계가 아니라 객관성이 부족하다"며 "수협 등에서 정확한 판매 실적이 나오는 원양 어업과 다르게 내수면 어업은 영세·겸업 어민 중심이라 조사가 어렵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매년 발간하는 어업생산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내수면 어업생산량은 4만2,879t으로 민물가마우지 개체수가 폭증하기 시작한 2011년의 3만1,901t 대비 34.4% 증가했다. 세부 어종별로 나눠보면 뱀장어(121.9% 증가)가 생산량을 견인했고 송어와 메기는 각각 8.5%, 48.8% 감소했다. 김인 강원도 내수면자원센터 내수면사업팀장은 "뱀장어는 저층성 어류라 방류하면 모래, 펄, 돌 틈으로 숨어 가마우지가 잡아먹기 어렵고, 고소득 품종이라 (타 어종 어획량 감소로 인한 피해를) 상쇄할 수 있다"며 지자체 주도로 뱀장어를 대량 방류했다고 설명했다.

국제 보호종이라 포획 금지됐다는 뉴스는 오보


민물가마우지 개체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자 세계적 추세다. 양식 어류 증가와 상위 포식자의 부재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그간 국제 보호종이라 포획 못 했다는 뉴스는 명백한 오보다. 민물가마우지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 기준 인간과 같은 '최소 관심(Least Concern)' 등급으로, 현재로서는 민물가마우지가 멸종할 가능성은 인간이 멸종할 가능성과 비슷하다. 'LC'를 ‘관심 필요’로 오역해 발생한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민물가마우지는 환경부령으로 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외의 야생생물’ 중 하나로, 멸종 위기와 무관한 동물 471종이 등록돼 있다. 민물가마우지도 여전히 목록에 포함되지만 ‘일부 지역에 서식밀도가 너무 높아 사업 또는 영업에 피해를 주는 경우’에 한해 포획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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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양평·수원·군산=글·사진 이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