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신중론에도 유럽중앙은행(ECB)이 내달 금리를 낮추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미국과 글로벌 주요국 간 ‘통화정책 동조화’ 기조에 균열이 선명해지면서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21일(현지시간) 아일랜드 RTE One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고 있다고 확신한다”며 “지표가 중기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2% 달성 확신을 강화한다면 다음 달 6일 (금리 인하)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실제 유로존은 물가 목표 달성에 상당 부분 근접했다는 평가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은 2.4%, 근원물가 상승률은 2.7%로 나란히 2%대를 기록했다. 이에 시장에선 ECB가 6월 0.25%포인트 금리 인하를 시작으로 추가 완화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분위기는 유럽과 사뭇 다르다. 22일 공개된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 위원들은 물가 상승 둔화에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며 “물가가 2%로 지속적으로 향한다는 더 큰 확신을 얻기까지 시간이 예상보다 더 오래 걸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금리를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다양한(Various) 참석 위원은 “인플레이션 위험이 현실화할 경우 추가 긴축을 할 의향이 있다”는 언급까지 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미 연방기금(FF) 금리 선물시장은 연준이 이르면 9월, 혹은 그 이후에나 첫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본다.
유로존 금리 인하가 현실화할 경우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리 각자도생’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11개국은 자국 경제 상황을 고려해 미국보다 한 발 먼저 금리를 내린 상태다. 물가 상승률이 1%대로 낮아진 스위스는 3월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1.5%로 인하했고, 스웨덴은 경기 부담에 지난달 금리를 4%에서 3.75%로 낮췄다. 주요국보다 먼저 금리 인상을 시작한 칠레, 브라질, 멕시코 등 신흥국도 저성장 타개를 위한 금리 되돌림 행렬에 속속 동참했다.
5월까지 열한 차례 기준금리를 동결한 한은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보고서에서 “내수 파급 시차를 감안해 선제적 통화정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공개 조언하는 등 발 빠른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서다. 반대로 한미 금리차가 역대 최대인 2%포인트로 벌어진 상황에서 섣불리 금리를 내리면 환율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23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미국과 금리 차별화를 묻는 질문에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 이유다. 이 총재는 “기계적으로 미국을 따라간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미국 통화정책 변화가 환율시장과 자본 이동성에 주는 영향, 국내 시장과 물가 영향을 고민하며 통화정책을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