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호주머니에 넣은 것 같은데...' 몇 번을 뒤졌는데도 나오지 않자 철원은 부랴부랴 부개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출근길 전동차가 더 꽉 차 보였다. 사람들 사이로 왼손을 뻗어 손잡이를 단단히 붙잡았지만 미세한 진동에도 몸은 거칠게 흔들렸다. 정차할 때마다 밀고 들어오는 인파로 흔들릴 공간조차 사라지자, 그는 중력에 몸을 맡긴 채 오른손으로 휴대폰을 쥐었다. 철원은 아침마다 동료 시민들의 살 냄새와 숨소리를 생생히 느끼며 서울역으로 출근한다.
4월 15일도 그랬다. 다만 유난히 큰 마스크로 바위 같은 얼굴을 덮은 게 평소와 조금 달랐다. 신문기자인 철원은 수도 없이 후배들의 기사를 고치고 다듬었지만, 막상 그날 새벽 출고된 기사를 다시 읽어 내려가자 감정이 통제되지 않았다. <”당신 탓이 아냐” 아내의 말에 남편은 10년 만에 울음을 터뜨렸다> 안경 너머 철원의 눈 주위에는 끈끈한 수분이 엉겨 붙기 시작했다. 각자 휴대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주변 사람들도 훌쩍거림이 예사롭지 않은지 철원을 힐끔 쳐다봤다. 눈물과 콧물을 훔칠 움직임조차 허락되지 않았기에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철원의 마스크는 물티슈처럼 젖어 있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인들에게는 눈물샘이 막혀 자주 눈가가 촉촉해진다고 둘러댔지만 실제로 그는 눈물이 많다. 나쁜 짓 많이 한 교인들이 더 열심히 기도하듯이, 철원은 눈물을 흘릴 때 오염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5월 7일 출근길도 마찬가지였다. <대학병원 옮기는 데 10시간··· 서른셋 산모, 둘째 낳고 하늘나라로> 기사를 수정하며 여러 번 눈물을 훔쳤지만 철원은 전철 안에서 또 울고 말았다. 자기 합리화나 나르시시즘일 수도 있겠지만 철원에게 공공장소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전혀 추하지 않다. 이따금 자기처럼 눈이 충혈된 승객이 보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사실 철원은 적당히 오염된 기자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외면하고 적당히 얻어 먹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 양심은 남아 있는지, 저널리즘을 지키려 분투하는 후배들을 보면 고개를 숙이곤 한다. 특히 도를 넘어선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행태를 보면 격하게 분노한다.
공수처장 오동운의 스무 살 딸은 재개발을 앞둔 부동산을 넘겨받을 때 3억 원이 넘는 구매자금을 모친에게 증여받았다. 현대자동차 사장 출신인 공영운은 다가구주택을 구입한 뒤 해당 주택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기 직전 군 복무 중인 아들에게 증여했다. 언론개혁 운동을 했던 양문석은 강남 아파트를 사들일 때 대학생 딸 명의로 10억 원 이상을 대출받아 충당했다. 이들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는 몇 마디로 퉁 치려고 했지만, 그런 편법을 알지도 못하고, 편법을 저지를 돈도 없고, 돈이 있어도 그래서는 안 된다고 믿어온 다수에게 이미 비수를 꽂았다.
그 순간 철원은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사회라고 말했던 어른 김장하가 떠올랐다. 우리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순진함을 비웃으며 잇속을 챙기진 않는다. 5월 23일 철원은 전철에 오르기 전에 겉옷 속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뜻밖의 물건을 건졌다. '여기 있었구나.' 한 달 전 분실한 줄 알았던 손수건을 찾았다. 철원은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