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해태htb '포도 봉봉'-1981년, ②해태아이스 '폴라포'-1984년, ③롯데웰푸드 '스크류바'-1985년, ④팔도 '비락식혜'-1993년. 30~40년 역사를 지닌 장수 음료·아이스크림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올해 들어 칼로리를 낮춘 제로 제품으로 새 옷을 갈아입고 시장에 재도전장을 던진 것.
스테디셀러는 신제품보다 상대적으로 제로 제품 개발이 쉬울뿐더러 기존 팬층이 두텁기 때문에 신규 고객 확보에 대한 부담이 적다. 여기에 제로 열풍을 이끄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까지 추가로 확보할 수 있어 출시가 늘어나는 추세다.
제로 시장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곳은 롯데칠성음료다. 제로 음료를 핵심 사업으로 삼고 올 초부터 '밀키스 제로 딸기&바나나', '칠성사이다 그린플럼', '게토레이 제로', '마운틴듀 제로슈거 블루' 등 기존 제품을 응용한 제로 음료를 쏟아내고 있다. 이미 팬층이 확보돼 있는 제품 위주로 제로 리뉴얼을 단행하면서 올 1분기(1~3월) 회사의 제로 음료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9.4% 증가한 700억 원을 달성했다. 전체 탄산 카테고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까지 높아졌다.
LG생활건강의 자회사 해태htb는 5월 '포도 봉봉'를, 팔도는 3월 '비락식혜'를 제로 음료로 내놨다. 두 제품 모두 레트로,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 열풍을 타면서 지난해부터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끈 음료들이다. '반짝' 관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건강까지 생각한 제로 버전으로 재구매를 유도해 MZ세대를 충성 고객으로 굳히겠다는 게 회사 측의 의도다.
아이스크림 업계도 제로를 적용할 제품으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를 택했다. 롯데웰푸드가 4월 출시한 제로 아이스크림 '스크류바 0㎉'와 '죠스바 0㎉'는 애초 1980년대 탄생한 장수제품이다. 롯데웰푸드는 제로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위해 롯데중앙연구소와 함께 천연감미료 알룰로스를 사용한 아이스바 제조 방법 관련 특허까지 출원했다. 이를 앞세워 제로 아이스크림 판매량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빙그레 자회사 해태아이스도 장수 제품을 응용한 '폴라포 커피 제로슈거'를 출시하고 판매를 강화하고 있다.
판매가 정체돼 있거나 고객 관심에서 멀어진 장수 제품들을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리뉴얼하면서 매출을 끌어올리겠다는 게 업계의 계산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로 제품에 관심이 많은 MZ세대의 시선을 끌면서 고리타분한 장수 제품의 이미지를 털어낼 수 있다"며 "아울러 건강 때문에 당을 멀리했던 기존 중장년층 고객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 음료·아이스크림 못지않게 제로 제품의 매출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편의점 GS25의 경우 1~4월 제로 탄산음료 매출이 전체 탄산음료 매출의 절반(52.3%)을 넘기기도 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전 세계 제로 식음료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약 22조7,200억 원으로 2027년까지 연평균 4%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몇몇 제품은 출시 직후 불티나게 팔리면서 급하게 판매량을 늘렸다. 롯데웰푸드는 당초 초도물량 320만 개를 계획했던 '스크류바 0㎉'와 '죠스바 0㎉'가 잘 팔리자 생산을 늘려 한 달 만에 약 720만 개를 팔았다. 팔도도 '비락식혜 제로'가 출시 50일 만에 판매량 300만 개를 돌파하자 생산량을 늘렸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제품과 같은 맛이면 좀 더 건강에 덜 해로운 제로를 택하게 되지 않겠나"라며 "음료·아이스크림 시장은 올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있어 고객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제로 경쟁은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