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자국이 테러 집단으로 규정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자국 동맹 이스라엘의 지도부에 동시에 체포영장을 청구한 카림 칸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장 등을 제재하기 위해 의회와 공조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21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의회가 ICC에 제재를 가할 요량이면 정부가 협력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민주적인 사법 체계를 갖춘 국가들의 사업에 ICC가 간섭하지 못하도록 막는 법안을 지지하겠느냐”는 짐 리시 상원 외교위 공화당 간사 질문에 그는 “적절한 대응책을 찾기 위해 초당적으로 여러분과 협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을 돕는 것은 물론 미래에 우리(미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ICC를 제재하려는 초당파적 노력을 지지할 것이냐”는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의원 질문에도 그는 “함께 일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대답했다.
핵심 명분은 동맹국 정상이 입은 수모에 대한 분노다. 제재 결의안 표결을 서두르고 있는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이날 취재진에 수배 대상이 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도록 초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ABC뉴스가 전했다. 이에 상원 다수당인 민주당의 척 슈머 원내대표도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처럼 ICC 조치를 지지하는 진보파 인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소수다.
미국이 내심 경계하는 것은 향후 ICC가 미국 인사의 처벌을 시도할 가능성이다. 2020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전쟁 범죄 혐의 조사에 착수한 ICC 판·검사에게 미국 내 자산 동결과 미국 입국 금지 등 제재를 가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120여 개국이 회원으로 참여 중인 ICC에 미국이 불참하고 있는 것은 자국 군인·지도자가 전쟁 범죄 혐의로 체포 대상이 될 개연성이 작지 않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이스라엘 편만 드는 것은 아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청문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에 요구 중인 가자지구 공격 중단,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등 관계 정상화 조건을 언급한 뒤 “현재로서는 이스라엘이 그 길로 나아갈 의지가 없을 수 있지만, 건국 때부터 이스라엘이 추구해 온 ‘역내 국가들과의 정상적 관계’라는 목표를 달성할지 여부를 조속히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제시한 ‘2국가 공존 해법’을 수용하라고 재차 압박한 것이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친(親)팔레스타인 시위자들이 블링컨 장관 발언 시작에 앞서 “부끄러운 줄 알라”, “당신은 전범이다” 등 구호를 외치다 퇴장당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