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서의 지상전에 줄곧 반대해 왔던 미국의 입장이 21일(현지시간) 변화할 조짐을 보였다. 이스라엘의 계획 변경으로 미국 측 우려가 상당히 해소됐다고 밝히면서다. 이는 라파 민간인 대피를 가리킨 발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피란민을 비롯한 가자지구 주민들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심각한 인도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21일 AP통신에 따르면, 익명의 한 미국 관리는 이날 기자들에게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남부 도시 라파에서의 대규모 군사 작전 계획에 있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우려를 상당 부분 해소했다"고 밝혔다.
이 관리는 "이스라엘 측이 라파 지상전 계획을 크게 변경했다"며, 이번 계획이 승인되긴 부족하다면서도 "미국의 우려가 진지하게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에 따르면 미국 관리는 이스라엘이 라파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이스라엘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무엇이 변경됐는지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라파 내 민간인 대피 상황과 관련됐을 것으로 보인다. TOI는 "이스라엘은 라파 군사 작전에 앞서 대피 명령을 내리고 있다"며 "미 고위 관리는 이스라엘의 최근 노력과 관련해 비판을 누그러뜨렸다"고 전했다. TOI는 최근까지 라파 내 95만 명가량의 팔레스타인인이 대피했으며, 30만~40만 명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피란을 떠난 사람들 역시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적했다. NYT는 "식량, 깨끗한 물, 화장실 부족 때문에 피란은 무척 끔찍한 경험"이라며 "폭등한 (피란) 비용으로 인해 노인과 장애인 등 교통수단이 필요한 이들은 피란을 갈 수 없게 됐다"고 짚었다.
이스라엘의 공습이 이어지며 가자지구 내 인도적 위기는 날로 심화하고 있다. 이날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엑스(X)를 통해 이스라엘 군사 작전 탓에 라파 내 식량 배급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AP에 따르면,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이날 지원 중단 여파를 묻는 질문에 "사람들이 먹지 않는다"고 간단히 답했다.
미국이 구호품 수송을 위해 건설한 가자지구 임시 부두를 통한 구호물자 전달도 난항을 겪고 있다. AP에 따르면 부두는 지난 17일부터 운영됐으나 지난 18일 수송 과정에서 약탈이 일어나 지원이 중단됐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측은 "(이스라엘에) 추가 경로 이용 협조를 받지 못하면 부두를 통한 운송은 실패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상황을 모른 체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미국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국제형사재판소(ICC) 주장을 "거짓말 덩어리"라 비난하며 구호에 협조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전날 ICC는 네타냐후 총리가 굶주림을 전쟁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의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며 체포 영장을 청구했다.
이스라엘이 인도적 지원을 방해한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영국 가디언은 이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 극우 활동가들이 구호 트럭을 막아 구호품 전달이 차질을 빚고 있다"며 "이스라엘 군인과 경찰이 이들에게 트럭 동선을 유출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