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 장애인은 재판 진술 면제?… 헌재, 위헌성 가린다

입력
2024.05.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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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성폭법 특례조항 위헌성 여부 심리 중
위헌 결정 나오면 장애인 법정 증언해야

성폭력 피해를 당한 장애인은 법정에 서지 않아도 그 증언을 재판 증거로 인정하는 특례 조항을 두고,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심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헌재가 위헌성이 있다고 본다면, 개정법이 시행된 지난해 10월 이전 성폭력 피해를 당한 장애인의 경우 원치 않더라도 법정 증언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22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씨는 2022년 2월 지적장애인 미성년자 강제추행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항소했다. 해당 사건 항소심을 맡은 부산고법 울산재판부 형사1부는 지난해 8월 헌재에 옛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성폭력처벌법) 30조 6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법원이 재판에 적용될 조항이 위헌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있을 경우, 헌재에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이번 위헌심판 대상은 성폭력범죄 피해자가 19세 미만일 때 혹은 신체·정신적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경우를 위한 조항이다. 이런 피해자들의 경우엔 피해자 진술 내용과 조사 과정을 영상물 녹화장치로 촬영·보존하고, 진술조력인 등의 진술 진정성이 성립된다고 인정되면 피해자의 수사기관 진술을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지난해 10월 개정법이 시행되면서 사라졌고, 법이 바뀌기 전 기소된 경우에만 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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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A씨 사건에서 피해자가 법정 증언을 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으며 이 조항에 위헌 소지가 있다고 봤다. A씨 변호인은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이고 피고인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어 법정에서 직접 진술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조항이 위헌 판단을 받게 되면 A씨 사건을 포함해 지난해 10월 성폭력처벌법 시행 이전에 성폭력 피해를 당한 장애인 피해자들은 법정에 서야 한다.

앞서 헌재는 2021년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도 법정에서 증언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가 법정에서 피해를 진술하면 2차 피해를 당하는 건 맞지만,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피고인의 방어권(반대신문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였다. 당시 헌재는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반대신문 기회를 보장하지 않는 입법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위헌성 여부를 두고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성폭력 재판부 경험이 있는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장애인 사건은 다른 성폭력 사건보다 형량이 훨씬 센데 반대신문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게 맞나 싶다"며 "피해자를 법정에 불러 장애의 정도 등을 보는 게 실체적 진실 발견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성폭력 사건을 다수 맡아본 이승혜 변호사는 "장애인들한테 거짓 사실을 주입하는 건 어려워 미성년자와 차이가 있다"며 "요즘엔 진술만으로 기소하는 경우도 드물고 2차 피해를 보호할 필요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결정이 바뀐 현행법의 위헌 논란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난해 10월 시행된 성폭력처벌법은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장애인도 법정에 증인으로 나서도록 규정하며, 별도 조항에서 신체·정신적 장애 등으로 공판에 참석해 진술할 수 없고 거짓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면 수사기관 진술을 증거로 삼을 수 있다는 식으로 보완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 안팎에선 개정법이 옛 법과 달리 '재판 출석 여부'를 전제로 하고 있어 현행법까지 위헌 심판 대상으로 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지난해 성폭력처벌법 개정에 관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현행법에 규정된 신체·정신적 장애는 법정에 출석해 진술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예시"라며 "장애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도 전보다는 높아졌다"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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